[충북일보] 눈 그쳐 화창한 날이다. 할머니 한 분이 저 멀리 보인다. 굽은 허리에 위태위태한 발걸음이 딱 내 어머니다. 호쾌하게 걸진 웃음소리가 동네를 채운다. 욕망이 사라진 평화로운 시간이다.
마을길을 따라 부드럽게 걷는다. 순한 사람들의 소박한 삶이 보인다. 낡아서 익숙한 풍경 속에 깃든다. 남쪽 섬에서만 느낄 수 있는 편안함이다. 혹독함 속에서 여행이 풍부해진다. 느린 걸음으로 상황을 받아들인다.
눈 속에 박힌 돌담이 그대로 수묵화다. 현무암 돌담의 흑백 조화가 기막히다. 돌밭 아래 양배추마저 멋진 그림이 된다. 골목 어귀 늙은 팽나무가 시간을 알린다. 고요함이 느릿느릿 흐른다. 돌아보고 나니 비로소 알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