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북일보] 한글날은 훈민정음(訓民正音)을 만들어 세상에 널리 알린 세종대왕의 업적을 기념하는 날이다. 한글의 우수성을 기리는 국경일이다. 정부는 국어기본법 20조에서 국민들의 한글사랑 의식을 높이기 위해 매년 10월 9일을 한글날로 정하고 기념행사를 갖는다.
충북도교육문화원도 9일 578돌 한글날 기념으로 21회 한글사랑큰잔치를 펼친다. 이날 한글날 행사로 한글사랑 백일장과 한글그리기 경연을 비롯해 한글사랑 전시, 함께 즐길 체험활동도 마련했다.
그런데 체험활동 중 일부 프로그램 제목이 한글과 외국어를 결합한 것이어서 눈살을 찌푸리게 한다. 한글날 기념행사의 의미를 퇴색시키는 것은 말할 것도 없다. 한글블럭, 반달크로스백 색칠하기, 커피클레이태극기, 한글 레진 그립톡, 한글캘리그라피, 미니한글빵 체험 등이 그것이다. 제목만 보고 무슨 내용인지 짐작하기조차 쉽지 않다. 외래어나 외국어를 우리글에 접목한 제목을 사용했기 때문이다. 한글사랑이 구호에만 그치는 것 같아 아쉽다. 교육기관의 한글날과 한글사랑에 대한 인식마저 의심받기에 충분하다.
우리 주변에는 외래어와 외국어 표현이 넘쳐난다. '키오스크'가 대표적이다. '무인 안내기', '무인 단말기', '무인 주문기'로 바꿀 수 있는 외래어다. 축구경기 해설가들이 자주 사용하는 '빌드업'도 마찬가지다. '공격 작업', '공격 개시', '공격 전술'로 바꿔 사용할 수 있다.
공공기관은 국어기본법 14조에 따라 일반 국민이 알기 쉬운 한글 용어와 문장으로 어문규범에 맞춰 공문서를 작성해야 한다. 필요할 경우 괄호 안에 한자 또는 다른 외국 글자를 쓸 수 있다. 정부나 자치단체의 각종 서류나 정책들은 국민생활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친다. 국민 누구나 전달하는 말과 글의 뜻을 이해하는데 어려움이 없어야 한다. 국토교통부는 이를 지켜 겨울철 아스팔트 도로 위에 얇게 얼어붙는 '블랙 아이스'를 '도로 위 살얼음'으로 순화하도록 권고하고 있다.
외래어나 외국어라 하더라도 이미 익숙한 표현을 굳이 우리말로 바꿀 필요가 있냐는 비판이 나올 수 있다. 바꿔보니 북한말과 비슷하다거나 세련되지 못하다. 국제화시대에 뒤떨어진다는 등의 의견도 제기될 수 있다. 그러나 이를 의식해 외래어나 외국어를 지나치게 사용하는 것은 정책에 대한 이해와 소통에 문제를 일으킬 수 있다. 국민의 기본적인 알권리를 침해할 수도 있다.
훈민정음은 백성을 가르치는 바른 소리라는 뜻이다. 여기에는 세종대왕의 백성을 사랑하는 마음이 고스란히 담겨있다. 세종대왕의 한글창제 목적은 '훈민정음 언해' 서문에 잘 드러나 있다. 나라의 말이 중국 한자와 달라 문자로 서로 통하지 않는다. 일반 백성은 말하고 싶은 것이 있어도 그 뜻을 전달하지 못한다. 이를 가엾이 여겨 새로 스물여덟 자를 만들었다. 모든 백성들이 훈민정음을 쉽게 익혀 날마다 편안하게 사용하라는 내용이다.
중국의 한자는 일반 백성들이 배우기 어려운 글자였다. 세종대왕은 백성들 누구나 세상과 쉽게 소통할 수 있도록 훈민정음을 만들었다. 한글날은 국민들이 서로 소통하는데 편리하게 사용하고 있는 한글에 담긴 뜻을 한번쯤 되새겨보자는 의미로 제정됐다. 그렇다고 한글사랑이 한글날에만 반짝 외치고 마는 행사여서는 곤란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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