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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창중

전 단양교육장·소설가

어느 주말, 음악학원을 마친 아이를 데리고 젊은 부부가 식사를 하러 인근 건물의 식당을 향합니다. 한두 걸음 앞서 걷는 아빠의 뒤를, 엄마와 손을 잡고 따르며 콧노래를 흥얼거리던 아이가 엄마에게 묻습니다.

"엄마, 이 노래 알아?"

"응? 오늘 연습한 곡이야? 새겨듣지 못했어. 다시 한번 똑바로 불러봐."

멜로디가 있는 곡인지 랩인지 구분이 안 될 정도의 콧노래여서 다시 들었지만 모르긴 마찬가집니다.

"잘 모르겠는데, 유명한 노래야?"

아이는 엄마의 얼굴을 바라보며 입을 삐죽 내밉니다.

"에이 엄마는…, 이걸 몰라? '볼빨간사춘기' 노래잖아. '러브 스토리'. 얼마 전 엄청나게 역주행했는데…."

"네가 너무 개떡같이 불러서 그렇잖아."

"그렇지. 내가 완전 개똑같이 불렀지."

"아니, 개떡같다고."

"그래, 개똑같다고."

접두사 '개'를 두고 엄마와 아이의 사이에 언어가 제대로 소통되지 않습니다.

어느 지하철.

점잖은 중년 남자의 옆자리에서 두 젊은이가 대화를 나눕니다.

중년은 젊은이들이 '개'로 시작되는 단어를 너무 자연스럽게 쓰는 걸 보고 깜짝 놀랍니다. '개웃겨' '개좋아' '개싫어' '개재밌어' 등 거의 모든 단어에 '개'를 붙여 말합니다. 요즈음 젊은 층이 단톡방에서 대화를 하거나 문자를 주고받을 때 '개'를 즐겨 접두사처럼 사용한다는 것은 알고 있었지만 그 정도로 일상화되었을 줄은 몰랐던 것입니다.

어느 군부대의 생활관.

저녁 점호를 준비하던 한 병사가 다른 병사에게 말합니다.

"그 여자 장교, 사진과 목소리가 예뻐서 기대했는데 실제로 보니 개못생겼어."

여성 장교를 비하한 이 병사는 훗날 상관 모욕 혐의로 법정에 섭니다. 검찰은 "피고인의 발언이 경멸적인 감정 표현에 해당한다"며 "피고인이 발언을 한 장소, 시간, 상대방 등을 종합할 때 순수한 사적 대화로 평가할 수 없다"고 주장합니다. 그러나 재판부는 "피고인이 사용한 '개'라는 표현은 국어사전에 의하면 '정도가 심한'의 뜻을 더하는 접두사"라며 "오늘날 청소년들이 '아주, 매우'라는 뜻으로 사용하고 있어 긍정적인 의미로도 해석된다"며 무죄를 선고합니다.

이처럼 접두사 '개'를 두고 사회 곳곳에서 논란이 벌어지고 있습니다. 한글학회가 지은 우리말큰사전을 보면 접두사 '개'는 '야생의' '참것이 아닌' '변변하지 못한'을 나타냅니다. '개꽃, 개머루, 개떡'이 이에 해당되죠. 또한 '헛된'의 뜻도 가졌습니다. '개꿈, 개죽음'이 이에 해당됩니다.

그러고 보니 '개'자가 머리에 붙는 단어는 우리 주변에 널렸습니다. 개자식, 개새끼, 개살구, 개구멍, 개꿈, 개떡, 개망신, 개불상놈, 개수작, 개잡놈, 개지랄, 개차반, 개판, 개헤엄, 개구멍, 개기름, 개나발 등 이루 헤아릴 수 없습니다. 아참, 개딸도 있군요.

단어들이 한결같이 그다지 유쾌한 의미로 받아들여지지 않습니다. 그런데도 요즘 젊은이들은 접두사 '개'를 애용합니다. 강아지를 가족처럼 여기는 애견인들을 생각해서라도 바르고 고운 말을 사용했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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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찰의날 특집 인터뷰 - 윤희근 경찰청장

[충북일보] 충북 청주 출신 윤희근 23대 경찰청장은 신비스러운 인물이다. 윤석열 정부 이전만 해도 여러 간부 경찰 중 한명에 불과했다. 서울경찰청 정보1과장(총경)실에서 만나 차를 마시며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눈 게 불과 5년 전 일이다. 이제는 내년 4월 총선 유력 후보로 거론된다. ◇취임 1년을 맞았다. 더욱이 21일이 경찰의 날이다. 소회는. "경찰청장으로서 두 번째 맞는 경찰의 날인데, 작년과 달리 지난 1년간 많은 일이 있었기에 감회가 남다르다. 그간 국민체감약속 1·2호로 '악성사기', '마약범죄' 척결을 천명하여 국민을 근심케 했던 범죄를 신속히 해결하고, '화물연대 집단운송거부', '건설현장 불법행위' 같은 관행적 불법행위에 원칙에 따른 엄정한 대응으로 법질서를 확립하는 등 각 분야에서 의미있는 변화가 만들어졌다. 내부적으로는 △공안직 수준 기본급 △복수직급제 등 숙원과제를 해결하며 여느 선진국과 같이 경찰 업무의 특수성과 가치를 인정받는 전환점을 만들었다는데 보람을 느낀다. 다만 이태원 참사, 흉기난동 등 국민의 소중한 생명이 희생된 안타까운 사건들도 있었기에 아쉬움이 남는다. 이러한 상황에서 맞게 된 일흔여덟 번째 경찰의 날인 만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