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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정민

청주시청 도시계획상임기획단, 공학박사

나는 그 회사 옥상에서, 다리 사이로 뜨거운 에어컨 환풍기 바람이 나오는 걸 느끼며 오래 앉아 있었어. 옥상에 벤치를 놔주는 인간적인 회사가 아니었기 때문에 빗물 자국으로 더러워진 환풍기를 의자 삼아 숨겨 올라온 비싸고 달달한 디저트를 먹었지

-정세랑, 「옥상에서 만나요」 중에서-

소설의 배경은 63빌딩과 남산타워와 한강이 보이는 유명 스포츠 신문회사 건물 옥상이다. 흔한 옥상 풍경이다. 소설 속 '나'뿐 아니라 드라마에서도 주인공들은 자주 옥상에 올라간다. 주로 달고 신 것으로 녹일 수 없는 나쁜 일들 때문이다. 그러나 옥상이 그 자체로 위로가 되는 공간은 아니다. 잠겨있거나, 소설에서처럼 에어컨 환풍기만 덜렁 놓여진 삭막한 공간이기 때문이다. 다만 옥상에는 일상의 시선과는 다른 시선으로 볼 수 있는 도시 풍경이 있다.

# 로테르담, 루프탐 데이즈(Rooftop Days)

네덜란드 제2의 도시인 로테르담은 건축의 도시다. 현대 건축의 성지이자 건축 박물관이라고 불리는 이 도시에는 6월이면 특별한 축제가 열린다. '로테르담 옥상 산책'이다. 도시의 번화가인 쿨싱겔 거리에 건물 지붕과 테라스를 연결하는 인공 보행로가 설치된다.

사람들은 인공 보행로를 따라 오래된 건축물과 현대적 건축물 사이를 산책하며 도시를 새롭게 관찰하고, 공유된 옥상 이곳저곳을 옮겨 다니며 파티를 즐기고, 식물 생활·빗물 이용·에너지 생산, 만남의 장으로서 옥상을 다르게 경험한다.

# 전 세계 옥상에서 벌어지고 있는 일

로테르담뿐 아니다. 전 세계의 옥상은 지금 새로운 가치를 발견하는 프로젝트들로 북적인다. 버려진 공간이 아닌, 실험의 공간이다.

옥상은 텃밭이나 정원, 태양광 발전설비를 설치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텃밭 옆에 팝업 레스토랑을 열거나, 가드닝 샵이나 동호회가 운영되기도 한다. 콘서트을 열거나 캠핑을 하는 일도 있다. 가까이 강원도 원주에서는 여름밤 옥상영화제가 열린다. 도시의 불빛이 무대 장치가 되어주고, 더 늦은 밤에는 별들이 빛을 더하는 낭만적인 밤이 될 것이다.

상상이 현실이 되는 프로젝트들도 있다. 네덜란드 전기차 업체인 위드라이브솔라(We Drive Solar)는 옥상의 태양광 에너지를 전기차에 활용하는 프로젝트를 추진한다. 암스테르담에는 레인비어가 있다. 비가 많이 내리는 암스테르담에는 모든 건물의 옥상에 빗물 저장 설비가 갖춰져 있는데, 레인비어는 말 그대로 옥상에서 모은 빗물을 정화해 만든 맥주다. 새집을 만들어 새와 공존하는 버스하우스 프로젝트, 모듈 형태의 거주 캐빈을 옥상에 설치하는 캐빈스페이시 프로젝트, 옥상은 이처럼 변화를 거듭하고 있다.

# 옥상에서 만나요

세종시 정부청사는 15개동이 하나의 건물로 연결되어, 옥상정원의 길이가 3.5㎞나 된다. 기네스북에 등재되었다. 설계 단계에서는 개방형이었는데 개청 후 7년이나 방치됐다. 민원이 생기자 일부 구간에, 한정된 시간에 개방한다. 설계 당시와 기능은 같은데, 보안이 이유다. 공원의 통상적 개념을 전복한 이 옥상정원은 기네스북 등재로 인해 세계적인 전시행정의 사례로 꼽히지는 않을지 우려스럽다. 가까이 문화제조창에도 근사한 옥상정원이 있지만, 찾는 사람이 많지 않다.

마당이 없어진 도시에서 옥상은 충분히 매력적인 공간이다. 선선한 바람이 부는 계절에는 내가 사는 도시에도 옥상에서 전시와 공연, 팝업 식당, 캠핑, 영화제, 요가와 댄스 클래스가 열리면 좋겠다. 옥상에서 만나, 우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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