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북일보] 세월이 느껴지는 붉은 벽돌이 오히려 멋스럽다. 구도심의 고즈넉한 분위기가 그대로 남은 청주 북문로2가에 어울리는 건물이다. 도심에서 쉽게 보기 힘든 건물 앞 공터를 활용한 야외 테이블도 이색적이다. 자연경관을 바라보는 자리는 아니지만 번잡하지 않은 거리에서 한가하게 여유를 즐기기에 적당하다. 반려견과 산책을 나왔다가도 부담 없이 나란히 앉아 맛있는 커피 한잔 즐길 수 있는 공간으로 점찍은 이들도 많다.
카페 펜더는 지난해 5월부터 시작된 공간이다. 서울에서 나고 자란 강민기, 권혁주 대표가 청주로 내려와 커피 맛을 전하게 된 건 민기 씨의 어릴 적 추억을 떠올리면서다. 커피에 관련된 일을 하다 만난 두 사람은 수많은 기호 중 취향의 접점을 찾았다. 좋아하는 향과 맛, 추구하는 분위기 등이 비슷해 함께 카페를 시작해보기로 했다.
서울을 벗어난 도시 중 마땅한 곳을 찾다 어릴 적부터 자주 찾아왔던 조부모님의 고향 청주가 생각났다. 도심인데도 조용하고, 유동인구가 적당히 있으면서도 소란하지 않은 동네의 기억이었다. 함께 둘러본 동네에서 한눈에 들어온 골목과 건물이 지금의 카페 펜더 자리다.
ⓒ카페펜더 인스타그램
일부러 심은 것도 아닌데 초여름부터 건물을 타고 올라와 색을 바꾸는 담쟁이덩굴이 마음을 사로잡았다. 붉은색 벽돌을 가리고 온통 초록인 건물이 됐다가 단풍의 색으로 물들었다가 잎을 떨구면 다음 해 다시 건물을 감싼다. 계절마다 스스로 다른 옷으로 갈아입는 건물은 다른 꾸밈이 필요하지 않았다.
펜더에서 추구하는 커피는 언제나 같은 맛을 내는 커피다. 같은 원두를 갈아도 날씨와 습도, 입자의 굵기와 추출하는 방식에 따라 달라지기 쉬운 것이 커피 맛이다. 날씨가 변덕스러운 날은 하루에도 여러 번 커피를 내려 맛을 확인한다. 변하지 않는 맛을 위해 그라인더와 머신 등 설정값을 맞추는 것이 이곳에서 가장 신경 쓰는 일 중 하나다. 고소한 맛과 산미가 있는 맛, 디카페인 커피 중 선택할 수 있는 펜더의 커피에 각각의 마니아층이 존재하는 것은 확실한 맛을 보장하기 때문이다. 취향에 따라 고른 커피를 한 입 머금으면 은은하게 올라가는 손님들의 입꼬리에 두 사람의 노력이 보상받는다.
손님들의 편의를 위해 공간 구성에도 신경 썼다. 테이블 간 거리를 널찍하게 두고 개인적인 공간감을 느끼게 하면서 혼자 오는 손님들이 작업에 몰두할 수 있도록 테이블마다 콘센트를 배치했다. 혼자만의 시간을 보내기 위해 카페를 찾는 이들이 많아지면서 기둥 뒤에 기대면 다른 이들 눈에 잘 띄지 않는 구석이 가장 인기 있는 자리로 등극했다. 창가 자리가 아니어도 앞뒤로 너른 창이 있어 바깥을 바라볼 수 있는 개방감도 답답함 없이 오랜 시간 펜더를 즐길 수 있는 요인이다. 주문 후 2층에 올라가 자리 잡으면 테이블까지 메뉴를 가져다주는 서비스도 요즘 카페에서 접하기 힘든 배려다.
에그타르트, 치즈케이크, 스콘, 크로플 등 매장에서 만든 디저트 메뉴도 음료 메뉴와 어울리는 것들로 준비했다. 자극적이지 않은 맛으로 커피와 먹기 좋은 수제 디저트다. 레몬, 자몽 등 어디에서나 맛볼 수 있는 에이드 메뉴를 빼고 자두, 복숭아, 체리 등 상큼 달콤한 맛에 집중한 것도 펜더의 취향이다. 여름에는 수박과 망고 등 어울리는 과일을 활용한 주스를 내고 겨울에는 딸기라떼 등으로 카페 안의 계절에도 변화를 준다.
펜더가 낯선 이들의 눈길을 끌만한 이벤트도 열심이다. 레스토랑과 꽃집 등 인근 상권과 연합한 할인 서비스를 제공하는가 하면 봄맞이 이벤트도 준비했다. 4~6일 열리는 벚꽃축제 기간 테이크아웃 20% 할인 서비스다.
혼자만의 공간으로 펜더카페를 즐기던 이들이 주변에 소개하며 함께 오는 일이 늘었다. 화려하진 않아도 한결같은 맛과 편안한 분위기에 은근히 빠져든 단골들의 조용한 영업 활동이다.
/김희란 기자 ngel_ran@nav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