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북일보] 옛것의 재발견이다. 할머니 집의 추억으로 기억 속에 남았던 자개장은 검은색 배경에 오색영롱한 빛으로 그려진 산수화가 주를 이뤘다. 한때는 부의 상징이기도 했고 유행처럼 번져 혼수 목록에 이름을 올리기도 했었다. 보석은 아니지만 오랜 시간 자연스레 빛나는 아름다움이 가치를 더했다. 묵직한 가구 위를 수려하게 꾸미던 자개가 한껏 가벼워진 매력으로 전혀 다른 세대에 스며들었다.
거울, 키링, 그립톡 등 일상에서 사용하는 소품 위에 자개가 들어앉았다. 팔찌, 귀걸이, 목걸이 등 악세사리의 포인트로 쓰여 영롱하게 반짝이기도 한다. 전복·소라·진주조개 등을 껍데기에서 추출한 자연의 빛은 모두가 오묘하게 다른 무늬를 내어보인다.
옻필무렵 최다은 대표가 자신의 작품을 들어보이고 있다.
'옻필무렵' 최다은 대표는 자개공예가 대중들에게 쉽게 다가갈 수 있도록 여러 매개체를 활용한다. 소품과 악세사리 등 실생활에 사용하는 물건에 자개를 담는가 하면 마크라메 패턴을 자개로 표현한 작품이나 친근한 캐릭터를 오려 만든 구성으로도 시선을 끈다.
다은 씨는 무작정 공예가 하고 싶었다. 오랜시간 집중해 무언가를 만들어내는 행위 자체가 즐거웠기 때문이다. 몇 시간이고 앉아서 커다란 십자수를 완성하거나 세밀하게 도장을 파는 등의 취미가 꼼꼼한 성격에 맞았다.
처음 생각한 공예는 금속공예다. 프랑스에서 금속 공예를 접해야 겠다는 생각과 추진력으로 프랑스어부터 배우기 시작했다. 언어 문제를 해결한 뒤 프랑스에서 1년 정도 생활하면서는 조금 생각이 달라졌다. 굳이 이곳에서 다른 나라의 공예를 찾을 필요는 없다는 깨달음을 얻었기 때문이다.
ⓒ옻필무렵 인스타그램
한국으로 돌아와 목공예에 눈을 돌렸다. 나무로 이것저것 만들어 보며 실력을 쌓다 전통공예를 추천받았다. 나무로 만든 물건에 시간과 가치를 입히는 옻칠이 흥미로웠다. 하고 싶은 것은 해야하는 결단력으로 충북 무형문화재 스승님을 수소문했고 무작정 찾아가 배움을 청했다.
그릇이나 가구 등에 천연도료인 옻나무 수액을 바르는 옻칠은 표면에 견고한 막을 형성해 광택을 더하고 오랜시간 변하지 않는 것이 특징이다. 6~7번씩 칠하고 고온다습한 곳에서 말리기를 거듭할수록 내열성, 내염성을 갖춰 더욱 가치있는 제품으로 다시 태어난다. 3년 가까이 아르바이트를 병행하며 옻칠에 매진했다. 함께 배운 기술로 자개 소품 등을 만들어 플리마켓에 참여하고 출강을 나가기도 했다. 대중들과 함께하는 공예에 매력을 느꼈다. 칠공으로 문화재수리기능자 자격을 취득하고 4번의 작품 수상으로 경력을 쌓은 뒤 자신의 일을 해보기로 결심했다.
정교한 기술과 오랜 시간이 필요한 옻칠 대신 많은 사람들이 취미로 가볍게 즐길 수 있는 분야로 자개공예를 선택했다. 다은 씨의 수업은 주로 한 시간 내외로 작업하는 자개공예로 아기자기한 소품을 만든다. 자개는 20~30대에게는 흐릿한 추억 속 낯선 아름다움이고, 50~60대에게는 귀한 것이라는 인식이 더해진 추억의 재료다. 익숙한 영롱함을 각기 개성을 담은 모양으로 자르고 붙이면 전혀 새로운 공예품으로 손에 넣을 수 있다.
판자개, 알자개, 실자개 등 여러 종류의 자개에 다은 씨의 도안을 담아 모양을 잡는다. 토끼, 돌고래, 별, 강아지 등 모양 자개는 세대를 가리지 않고 귀여운 자개의 매력에 빠지게 한다. 같은 조각들을 골라도 디테일은 모두 다르다. 가루 자개는 별들이 수놓인 밤하늘도 될 수있고 일렁이는 파도나 모래알로 표현되기도 한다. 자개의 변화는 무한한 가능성을 가진다. 끊음질로 글자를 만드는 것도, 평소 좋아하는 만화 캐릭터를 도안으로 그려 완성하는 것도 각자의 공예다.
자연물이 주는 오묘한 빛을 한껏 끌어안은 자신만의 소품이 일상 속 공예의 가치를 재해석한다. 언젠가는 시간이 걸리더라도 일상 속 취미로 즐길 수 있는 옻칠 과정도 운영해볼 생각이다. 천연안료와 섞은 색옻칠은 시간이 지나야 제 색을 낸다고 한다. 한참의 시간을 겪어야 옻이 핀다. 이곳 저곳에 겹겹이 칠해둔 다은 씨의 옻이, 피고 있다.
/김희란 기자 ngel_ran@nav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