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북일보] 아득히 먼 옛날에도 냇가에서 옷을 두드리던 그림을 볼 수 있다. 빨래의 의미다. 우리나라에 세탁기가 보급된 지도 50여 년이 지났다. 세탁소에나 가야 세탁기를 구경하는 시절도 있었지만, 이제는 세탁기 없는 집은 거의 없다. 세탁기를 넘어 의류 관리기까지 집 안으로 들이는 추세다. 동네마다 무인 빨래방도 쉽게 눈에 띈다. 그런데도 세탁전문가의 손길을 찾는 이들은 여전히 많다.
세탁전문가를 찾아야만 하는 이유는 의류마다 옷감과 스타일 등이 다양화되며 단순 세탁으로 해결하기 힘든 경우가 많아져서다. 이런 흐름을 놓치지 않고 20여 년 전부터 세탁업에 몸을 담은 청년이 있다. 수년 전부터 전국에서 의뢰 택배가 쏟아지며 여러 방송에서 세탁 명인으로 소개된 '최정민과 함께하는 크리닝마스터(행복드림세탁)'의 최정민 마스터다.
신사복 판매장에서 일하던 정민 씨는 셔츠와 정장 등을 갖춰 입고 대부분의 시간을 보냈다. 매일 셔츠를 세탁하고 다려입는 자신과 달리 며칠씩 같은 셔츠를 입는 사람들이 눈에 들어왔다. 옷을 제대로 소개하기 위해 원단을 배우고 섬유를 공부하는 과정에서 세탁업에 대한 가능성을 엿봤다.
하던 일을 그만두고 세탁 일을 배우기 위해 동네 세탁소에 들어갔다. 세탁업계는 폐쇄적이었다. 쉽게 기술을 공유하려 하지 않았다. 어깨너머로 몰래 세탁 기술을 배우며 정리와 배달 등 허드렛일을 도맡아 하다 5년쯤 지났을 때 무작정 부딪혀 보자는 마음으로 가게를 차렸다. 의류는 아직 자신이 없었다. 기존에 없었던 운동화 전문 세탁소로 시작한 업장은 편의를 위해 찾는 사람들로 가득했다. 1년 6개월쯤 운영해본 뒤에는 중고 세탁 기계를 들였다. 아내와 결혼하며 의류 세탁도 함께 해보기로 한 것이다. 시행착오를 겪어가며 차츰 성장하던 행복드림세탁은 세탁 교실에 참가해 전국 각지의 세탁인들을 만나며 새로운 기회를 맞았다.
ⓒ크리닝마스터 인스타그램
일명 숨은 고수라는 기능인들을 알게 됐다. 3~4년간은 쉬는 날 없이 전국 각지를 찾아다녔다. 대구, 부산 등 작은 골목에 은둔한 수십 년 기술자들에게 비용을 내며 하나하나의 기술을 습득했다. 10년쯤 세탁업의 기초를 쌓았다면 다음 10년은 완성형 세탁 기술을 선보일 수 있었다.
태명이 행복이었던 첫 아이가 세상에 나왔을 때 새로운 세탁 기술도 자연스레 익혔다. 유모차와 카시트 등 아이에게 닿는 것을 씻을 때 나쁜 것은 모두 빼내야 했다. 직접 개발한 친환경 세제를 사용한 유아용품 세탁은 금세 입소문을 타고 지역에 퍼졌다.
니트, 패딩, 부츠 등 어려운 소재와 형태의 복원도 문제없이 해냈다. 세탁을 단순한 얼룩 제거라고 생각하지 않았던 인식에서 비롯됐다. 크리닝마스터의 세탁은 고객과의 상세한 상담을 통해 섬유와 얼룩, 얼룩과 염색 등의 관계 정립부터 시작하는 의류 관리다. 자신이 배합한 세제로 오염 요인과 섬유에 맞는 세탁 방법을 적용하는 것이다.
청주 시내 11개 가맹점에서 점주들과의 상담을 거쳐 크리닝마스터 본사로 모이는 의류는 몇 년 전 설립한 100평 규모의 공장을 가득 채운다. 각각의 특색과 상태에 따라 관리받은 의류는 다시 처음과 비슷한 상태로 고객의 손에 닿는다. 고객들의 추운 겨울을 감싸던 두꺼운 패딩들은 3~6월 이곳에 모여 전용 세제로 관리를 받은 뒤 다음 겨울을 준비한다.
수천만 원대를 호가하는 밍크 수십 벌을 한 번에 맡긴 업체나, 이름만 대면 알만한 디자이너의 복원 의뢰, 명품 브랜드의 제휴 요청이 정민 씨의 자존감을 올린다. 수소문 끝에 찾아올만한 기술을 가졌다는 자부심이다.
언제나 사람들의 차림새를 살피고 백화점 신상에도 부지런히 시선을 돌린다. 만져보고 입어보는 것부터 제대로 된 의류 관리의 시작이다. 여러 오염 물질을 다양한 옷감에 묻혀보고, 흔적없이 지우기의 반복이다. 어떤 옷감과 색감이 세상에 나와도 그 상태 그대로 유지하기 위한 집념으로 갈고 닦는다. 크리닝마스터가 추구하는 스스로의 성취감은 결국 고객을 만족시키는 행복드림 비법이다.
/김희란 기자 ngel_ran@nav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