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북일보] 조선 청주점은 '육전 맛집'으로 소문이 났다. 처음 오는 사람도 반드시 시키게 되는 음식이다. 이미 맛을 봤던 단골은 물론 소문을 듣고 왔거나 지나가다 발길이 멈춘 이들도 고소한 냄새부터 참을 수 없다. 비 오는 날이면 자리 잡기가 힘든 이유는 유독 진하게 코끝에 머무는 기름 냄새 때문일 것이다.
얇은 소고기에 달걀 물만 살짝 묻혀 튀기듯 구워낸 육전은 조선 청주점의 대표 메뉴다. 두툼하게 질겅거리거나, 느끼했던 기억으로 육전을 별로 좋아하지 않던 이들도 그간의 고정관념을 살포시 내려놓는다. 넓적한 채반 위에 종이를 깔고 잔칫날처럼 펼쳐 담은 육전이 시선을 끈다. 반 접시만 시켜도 푸짐한 양은 다른 메뉴를 함께 즐기고 싶은 손님들을 위한 배려다.
첫맛은 파삭하면서도 부드럽게 씹히는 것이 특징이다. 몇 번 씹기도 전에 고소한 맛만 남기고 사라진다. 함께 제공되는 파김치와 무말랭이무침, 다진 파와 고추를 넣은 양념간장은 자칫 남을 수 있는 묵직함을 산뜻하게 씻어 내린다.
ⓒ조선 청주점 인스타그램
조선은 한식과 퓨전 한식 메뉴를 주력으로 하는 한식 선술집이다. 육전을 비롯해 해물파전, 새우전, 명란 참나물 전 등 전 메뉴와 냉채 수육, 꼬막무침, 조개술찜, 명란 두부찌개, 민물새우 찌개 등 다양한 한식 안주가 준비된다. 다양한 주종도 갖췄지만, 메뉴에 맞게 전략적으로 내세우는 술은 전통주다.
홀 서빙 아르바이트부터 시작해 주방을 거쳐 10여 년이 넘는 시간 동안 여러 분야의 요식업에 몸담았던 박주성 대표는 튀김과 볶음 요리를 주로 했던 이자카야를 운영했었다. 한동안 잘 유지되던 식당은 불매 운동 등 시류에 맞닿아 순식간에 휘청였다.
꾸준히 잘할 수 있는 업종으로 고민하던 차에 전통주를 처음 맛본 주성 씨의 머리가 번뜩였다. 전통주라 하면 막걸리 정도만 알고 있었던 그에게 '앉은뱅이 술' 이라고도 불리는 전통주의 첫 잔은 가히 충격적이었다. 일반적으로 흔히 마시던 술과 다른 맛과 향이 색다른 매력으로 다가왔다.
전국 각지에서 만들어지는 전통주는 과실주, 증류주, 탁주, 약주, 리큐르 등 각각의 종류에 따라 확실한 차이를 가진 상품이다. 조선 청주점에는 주성 씨의 취향이 반영된 전통주들이 손님들에게 선을 보인다. 천여 가지가 넘는 종류의 전통주를 모두 맛볼 수는 없어도 기회가 닿는 대로 맛을 보고 선별해서 가게에 들인다.
전통주의 이름 옆에 쌀, 벌꿀, 매실, 복숭아, 사과 등 맛을 느낄 수 있는 재료와 도수 등을 상세히 적어 고민을 덜게 한다. 자신에게 신선한 충격으로 다가온 전통주의 맛을 아직 몰라서 즐기지 못하는 손님들에게 되도록 많은 맛을 소개하고 싶은 욕심에서다. 가장 적극적인 마케팅은 시음이다. 하루에 두 종류씩 셀프바에 꺼내어 두는 전통주는 예쁜 모양을 잔들과 함께 놓는다. 누구나 자유롭게 자신이 선택한 잔에 한 두 잔을 채워 새로운 술을 음미한다. 가게를 찾은 손님들의 연령층이나 분위기에 따라 그날의 술은 달라진다. 시음용 술을 맛본 이들은 더 쉽게 전통주에 마음을 연다.
청어알젓무침, 들기름 달걀구이, 명란 구이 등 가볍게 먹을 수 있는 메뉴도 부담 없이 즐길 수 있는 요인이다. 묵은지 김치찌개에 달걀구이를 더해 밥을 비벼 먹거나 민물새우 찌개로 식사를 하기 위해 찾아오는 손님들도 주성 씨의 손맛을 인정한다.
한 번 앉으면 쉬이 떠나지 않는 손님들이 많은 것은 굳이 움직이지 않아도 변화를 줄 수 있는 메뉴의 다채로움 때문이다. 여러 가지 메뉴와 주종을 바꾸면 새로운 분위기와 시간이 된다. 메뉴에 없지만 그날의 장보기에서 선택한 제철 재료로 만들어지는 가끔의 서비스도 조선 단골들을 기대하게 한다. 특정 연령층에 국한되지 않은 손님들이 각자의 즐거움으로 조선의 분위기를 만든다.
/김희란 기자 ngel_ran@nav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