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북일보] 추워진 날씨에도 푸르름이 가득하다. 길을 만들면서도 애써 살려둔 커다란 나무를 고개 숙여 지나면 건물을 중심으로 그림처럼 꾸며진 조경이 손님을 맞는다. 계단 하나를 사이에 두고 온실처럼 만들어 둔 다육이 화원도 싱그럽다. 밭에 심었던 꽃과 작물은 추위에 사그라 들었지만 투명한 건물 속 다육식물들은 여전히 제모습이다. 초코루나에서 내려다 보이는 풍경에 생기가 넘친다.
2021년 이곳에 자리잡은 초코루나는 지난 2013년 내수에서 시작한 수제초콜릿 전문점 미스문초콜릿의 시즌2다. 미스문초콜릿이 체험 위주의 공간에 집중하면서 다양한 초콜릿 제품을 접할 수 있는 카페 겸 매장으로 초코루나를 시작했다.
ⓒ초코루나 인스타그램
시골에서 자란 문정하 대표에게 디저트는 행복한 음식이었다. 쑥카스테라, 맘모스빵 등 흔한 빵도 자주 접할 수 없던 시절, 어쩌다 시내에서 사오는 빵 한 입에 활짝 웃으시던 아버지의 표정이 행복 그 자체로 각인됐다. 전자를 전공하고 직장 생활을 하면서도 제과제빵학원을 다니며 자격증을 취득한 이유는 언젠가 손수 만든 행복을 전하고 싶어서였다. 그런데 막상 빵을 배워보니 생각이 달라졌다. 만드는 과정은 재미있었지만 설탕과 쇼트닝, 마가린 등이 듬뿍 들어가는 음식은 더이상 행복으로 보이지 않았다.
호텔조리학과에 다시 진학해 건강한 디저트를 찾기 시작했다. 영감을 준 것은 초콜릿 관련 영화다. 윤기가 흐르는 검은색 달콤함의 상징은 그간 시판 제품으로 접한 편견 속 그것과 달랐다. 달콤함에 가려졌던 카카오의 효능에 눈이 번쩍 뜨였다. 교수님을 통해 초콜릿 전문가를 만나고 검색과 수소문으로 말레이시아 카카오농장을 직접 찾아가기도 하며 열과 성을 다해 카카오를 공부했다.
문정하 대표
그러는 동안에도 창업자금을 모으기 위해 꾸준히 직장 생활을 했고 직장 생활과 병행하며 가게를 운영하기도 했다. 미스문초콜릿을 시작한 것은 출산 후 아이를 키우면서다. 좋은 기회를 만나 용기있게 시작했지만 알리기는 쉽지 않았다. 정하 씨가 선택한 방법은 무작정 먹여보는 것이었다. 정하 씨의 초콜릿을 먹어본 사람은 반드시 시판 초콜릿 제품과의 차이를 알 수 밖에 없었기 때문이다.
아이와 함께 공원에 가거나 동물원에 갈 때도 시식용 초콜릿을 챙겼다. 학원 체험학습 등을 통해 미스문초콜릿을 맛본 이들도 자신이 먹는 것에 그치지 않았다. 다른 이들에게도 그 맛을 알리기 위해 다시 찾아왔다. 카카오버터 100% 초콜릿으로 개개인의 작품을 만들어 소중한 사람과 나눠먹는 행복은 아이들뿐 아니라 직장인과 중장년층에게도 달콤한 시간이었다. 체험과 제품 모두 제대로 된 초콜릿의 기쁨을 알리는 도구가 됐다.
10여 년간 미스문초콜릿과 인연을 이어온 단골들이 초코루나에 기대하는 것 역시 초콜릿 본연의 맛이다. 프랑스산 커버춰를 사용하기도 하지만 카카오 열매를 발효·건조한 뒤 로스팅한 카카오빈 껍질을 벗기고 갈아서 만드는 빈투바(bean to bar) 초콜릿이 주력인만큼 세세한 선택이 가능하다. 카카오의 함량과 대체당 등 자신만의 재료를 정해 주기적으로 가져가는 고정 고객들이 따로 있을 정도다. 카카오빈을 이곳에서 분쇄한 카카오닙스에 초콜릿 코팅을 더한 제품은 씁쓸하고 딱딱하다는 그간의 인식을 뒤집는다.
유기농 건조 과일 조각을 붙인 판초콜릿이나 홍차, 말차 등 풍미 가득한 가나슈로 채워진 봉봉 초콜릿, 견과류를 듬뿍 넣은 망디앙, 쫀쫀하게 씹히고 깔끔하게 녹아내리는 파베초콜릿 등 평소 익숙했던 초콜릿에서도 원재료의 차이를 느낄 수 있다. 뽕잎가루과 오디, 현미 등 로컬 푸드를 활용한 제품들도 정하 씨의 열정이 엿보인다. 과일과 비스킷 등을 함께 담은 초콜릿보드로 골라먹는 재미도 즐긴다.
쌀쌀해진 날씨에 더욱 좋은 것들은 또 있다. 마당의 텐트와 코코아밤이다. 편평한 마당에 놓인 텐트는 전기장판과 난로까지 갖춰 아늑함으로 무장했다. 따뜻한 우유를 부어 코코아밤을 녹인 핫초콜릿 한 모금에 낭만이 더해진다. 숙성과 로스팅, 72시간 이상의 콘칭 후 템퍼링을 거친 진짜 초콜릿을 만나볼 때다.
/김희란 기자 ngel_ran@nav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