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옷집
[충북일보] 없던 추억도 회상하게 하는 정겨운 모습이다. 청주 봉명동 골목을 지나다 보면 눈에 띄는 초가집을 발견한다. 정갈하게 엮은 지푸라기가 어엿한 처마를 만들었다. 나무 틀에 종이를 바른 창문부터 황토를 덧바른 듯한 벽면, 좁지만 앉아볼 수 있는 마루 밑 장작까지 그럴듯하게 꾸몄다. 메줏덩어리와 줄에 엮어 매단 감, 항아리와 몇몇 농기구도 분위기를 만든다. 소반 위에 가지런히 올린 작은 고무신도 귀여운 포인트다. 가끔 전통주를 파는 전집으로 착각하고 들어오는 손님도 있을 수밖에 없다.
시옷집 고석민 대표
시옷집은 냉동 삼겹살에 대한 편견을 허물고 싶어 냉동 삼겹살 전문점을 선택한 고석민 대표의 도전이다. 조금씩 달라지고는 있지만 생삼겹살보다 저렴하고 맛이 없다는 막연한 인식이 많은 냉동 삼겹살이다. 맛있게 구워 제대로 먹으면 어떤 고기에도 뒤지지 않는 냉동 삼겹살의 참맛을 대중적으로 알리고 싶었다.
시옷집의 고기는 1등급 국내산 암퇘지를 급랭해 사용한다. 신선한 고기는 눈으로도 보인다. 불판에 오르기 전 겹겹의 선명한 결을 눈으로 확인할 수 있다. 숙성 삼겹살을 냉동해 특유의 고소함도 그대로 살렸다. 4mm로 자른 고기는 0.5mm의 차이까지 정확하게 찾아내고자 여러 크기로 잘라 맛을 보고 선택한 최적의 두께다. 익는 속도와 씹는 맛까지 고려한 결과다.
자신이 있는 만큼 메뉴도 급랭 삼겹살 하나다. 단지 세트 메뉴에는 냉이된장술밥이 포함된다. 추억의 콘셉트로 무장한 만큼 차림새와 맛에도 경험을 담았다. 어머니가 끓여주시던 냉이 된장찌개의 향긋함을 기억했다. 제철에 손질해 얼려둔 냉이가 사계절 내내 된장과 함께 끓어오른다. 무, 두부, 호박, 고추 등 건더기가 푸짐한 뚝배기를 가득 채운다. 칼칼하게 곁들이는 된장 술밥을 먹기 위해 찾아오는 이들도 있을 정도다. 할머니가 퍼주셨듯 넘치게 솟아오른 공깃밥도 정으로 채운다.
동그란 양은 쟁반을 빼곡하게 채운 곁들임 메뉴들은 사람 수보다 많은 냉동 삼겹살을 굽게 한다. 두툼하게 준비한 계란말이로 가볍게 입맛을 돋운 뒤 새콤달콤하게 무친 파절임, 김치, 콩나물, 무생채와 마늘종 등 고기와 곁들이는 부재료에 따라 다양한 맛으로 즐길 수 있어서다. 새우젓, 기름장, 쌈장, 참기름 고추장 등 기본적으로 찍어 먹는 양념도 맛을 더하지만 달걀노른자를 넣은 간장소스는 시옷집에서만 먹을 수 있는 별미다. 특제 양념으로 주방에서 볶아 가져다주는 볶음밥은 배가 불러도 꼭 먹고 가는 마무리 메뉴다.
테이블마다 깔린 신문지도 하나의 장치다. 식탁에 가까이 가면 바스락거리며 삼겹살 기름을 흡수하는 신문지가 시골집에서 가족들과 함께 구워 먹던 고기의 추억을 되살린다.
시옷집의 시옷은 사람인(人)의 모양을 의미한다. 가족과 함께 옹기종기 모여앉아 신문지를 깔고 고기를 구워 먹던 따뜻한 기억이 지금은 쉽게 볼 수 없는 시골집의 분위기에서 재생되길 바라서다. 사람과의 정이 가득 담긴 식사 한 끼로 따뜻함을 느끼고 돌아가는 것이 시옷집의 의도다.
석민 씨의 의도는 시옷집 식탁 옆에 준비된 서비스 목록에서도 확인할 수 있다. 말하는 것조차 쑥스러운 이들을 위해 태블릿으로 주문할 수 있게 해둔 무료 서비스는 여러 고깃집을 다니며 본인이 불편하거나 필요했던 것들로 가득 채웠다. 안경과 핸드폰에 혹여 튈 수 있는 기름기를 닦을 알코올 티슈, 아이와 함께 온 손님들을 위한 핸드폰 거치대와 아기용 김도 주문할 수 있다. 일회용 가글과 칫솔, 치약, 머리끈은 물론 비상약까지 요청하면 가져다 준다. 급하게 휴대폰 충전이 필요한 손님들은 멀리 맡길 필요없이 무선충전기를 제공한다.
사소한 것까지 살뜰하게 챙기는 서비스가 만족스러운 식사의 기억을 추억으로 새긴다. 시골집에서 먹었던 그 냉동 삼겹살이 땡기는 날이 잦아졌다는 시옷집 단골들의 소회는 고기맛 때문만은 아닐 것이다.
/김희란 기자 ngel_ran@nav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