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북일보] 메뉴가 나오는 순간 저마다 사진을 찍기 위해 휴대폰을 꺼내 든다. 어떤 메뉴를 시켜도 눈으로 먼저 즐거움을 만끽할 수 있는 구성이다. 한입에 들어갈 만한 동그란 방울 모양의 연어 초밥이 앙증맞다. 꽃꽂이한 듯 연어를 중심으로 꽂힌 몇 개의 꽃가지가 분위기를 더한다. 얇게 저며 연어 위에 붙여둔 순무나 두툼한 연어에 칼집을 낸 뒤 불에 그을린 자욱도 하나 하나 신경 쓴 디자인의 완성이다.
산더미처럼 쌓아 올린 육회 덮밥이 탄성을 자아내는가 하면 드라이아이스의 은은한 연기를 이용해 안개처럼 연출한 연어 국수사리 소바는 공중에 떠 있는 것처럼 보이는 젓가락의 신기한 모습에 다른 테이블의 시선까지 단번에 사로잡는다.
ⓒ수암골 연어곳간 인스타그램
메뉴 이름에도 고심의 흔적이 역력하다. 연어를 먹고 싶어서 찾아온 단골도 늘 선택의 기로에 서게 한다. 수암골 쿠션 방울 초밥, 수암골 연어 국수사리 소바, 수암골 꽃망울 연어 초밥, 수암골 벽화마을 전복단새우연어동, 전망대 연어 육회 덮밥 등 수암골을 상징적으로 활용한 메뉴명이다.
수암골은 청주의 명소 중 하나지만 수암골도 아닌 곳에 그 이름을 활용한 메뉴로 가득한 가게를 만든 것은 백승배 대표의 스토리텔링 중 하나다. 청주에서 가장 인상적인 장소, 그리고 힘들 때마다 찾게 되는 장소였던 수암골을 꼭 활용하고 싶었기 때문이다.
친구를 만나러 놀러 왔던 것 이외에는 별다른 연고가 없던 청주에 자리 잡게 된 것은 자신의 첫 초밥 전문점을 운영하면서다. 나고 자란 경기 지역에서 일을 배우고 여러 업종의 식당을 두루 거치며 가장 마음을 끈 메뉴가 초밥이었다. 식자재를 위해 시원한 여건을 만들어 줘야 하는 만큼 요리사도 쾌적한 환경을 배경 삼아 일할 수 있다는 것이 좋았다.
수암골 연어곳간 백승배 대표
배달 전문점을 시작하기 위해 두루 알아보던 때 우연히 청주에서 기회를 만났다. 몇 년간 운영했던 초밥 전문점은 승배 씨가 좋아하는 초밥 중에서도 가장 잘할 수 있는 것을 찾는 경험이었다. 신선한 해산물과 익숙한 맛으로 금세 단골을 확보한 가게는 쉬이 자리 잡았다. 간간이 복잡한 상황이 찾아오면 수암골에서 야경을 내려다보며 마음을 다스렸다.
초밥을 취급하며 수많은 생선과 해산물 등을 다뤘다. 대중적인 음식 가운데 특별한 무언가를 찾고 싶었다. 가장 잘할 수 있는 음식, 주력 메뉴를 고심한 끝에 선택한 것이 연어다. 연어는 특별한 숙성을 자부할 수 있는 재료일 뿐 아니라 다양한 활용이 가능할 것 같았다. 다른 곳에서는 먹을 수 없는 자신만의 연어 메뉴를 만들어 주변에 선보이며 확신을 얻었다. 딱 맞게 숙성한 연어로 할 수 있는 메뉴는 생각보다 많았다. 모양을 달리해 씹는 맛이 달라지면 본연의 재료 맛까지 다르게 느껴졌다. 곁들이는 부재료에 따라서도 다른 음식처럼 표현할 수 있었다. 백승배 대표만의 연어 메뉴로 가득 채워진 것이 청주 복대동에 문을 연 연어 전문점 수암골 연어곳간이다.
연어를 좋아하는 사람들도 그간 어디에서도 보지 못했던 연어를 만난다. 여느 초밥집에서 보던 직사각형의 연어 대신 동그란 밥을 감싼 방울 모양이나 국수처럼 얇고 길게 썰어내 소바처럼 후루룩 맛보는 새로운 연어다. 나무 그릇 안에 수암골 벽화마을의 알록달록한 분위기를 담은 수암골 벽화마을 연어동 등도 색다른 즐길 거리다. 전망대를 상징하듯 수북하게 쌓는 담음새나, 육회에 곁들이는 메추리 알, 국수 아래 함께 내는 드라이아이스 등 섬세한 꾸밈이 먹는 재미에 앞선 보는 재미를 완성한다.
청주에서 나는 쌀과 고구마, 방울토마토 등의 음식 재료를 활용해 청주를 한 그릇에 오롯이 선보인다. 청주 수암골의 이미지로 채색된 연어와 음식을 눈과 입에 담은 기억이 뇌리에 박힌다. 누군가는 안개 낀 수암골 전경을 내려다보며 연어국수를 입에 넣고, 누군가는 한겨울에 핀 연어 꽃을 보며 벽화마을을 음미한다. 여행의 즐거움이 더해지는 푸짐한 한끼다.
/김희란 기자 ngel_ran@nav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