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북일보] 메뉴는 하나, 고민이 필요 없다. 닭갈비를 먹으려는 사람만 들어서는 가게다. 취향에 따라 사리를 추가하고 사람 수에 맞게 주문하면 곧 정량의 닭고기와 양배추, 대파, 떡이 특제 양념을 얹어 흰 그릇에 담겨 나온다.
노선호 대표의 손에 전달된 그릇 속 음식이 무심한 손길로 철판으로 쓸려 내려간다. 철판이 달궈지는 동안 채소와 생고기를 바라본다. 그 순간을 기다리지 못하고 철판 속을 헤집는 손님들에게는 여지없이 노 대표의 제지가 이어진다. 처음 제지당한 사람들의 당혹감도 잠시다. 먹기 좋은 순간까지 이어지는 30년 경력 전문가의 현란한 손길에 시선을 빼앗긴다. 자주 뒤집지도 않고 계속 머무르지도 않는다. 시작이 다른 여러 테이블을 혼자서 움직이며 볶음에 가까운 닭갈비의 익힘 정도를 정확하게 맞춘다. 불의 세기나 양에 따라 시간과 움직임을 감으로 조절하는 것은 세월이 쌓아 올린 경험이자 비법이다.
원조춘천닭갈비에서 테이블마다 놓인 지름 50cm가량의 원형 철판 17개는 온전히 노 대표의 영역이다. 가게 안에서는 자신이 조리해야 가장 맛있게 완성할 수 있다는 자부심으로 손님들에게 굽는 과정을 전가하지 않는다. 그저 기다리다 편안한 식사를 대접받게 한다.
처음 이곳을 찾은 몇몇 손님들의 오해를 살만한 엄격함도 있다. 채소와 고기, 양념 등의 조화가 계산된 그릇을 양보하지 않기 때문이다. 쌈용으로 제공된 깻잎을 몰래 찢어 넣는 손님과 그 깻잎을 하나하나 건져내는 사장님의 모습이 포착되기도 한다. 원조춘천닭갈비에서는 원조춘천닭갈비만의 닭갈비 맛을 그대로 즐겨보길 바라는 자부심 가득한 하나의 고집이다.
1994년 청주 육거리 인근에서 시작한 그의 닭갈비 사랑은 30년이 지나도 변함없이 뜨겁다. 닭갈비를 양념하고 조리하는 부부는 물론 나고 자라면서 쭉 부모님의 닭갈비를 가까이 한 자녀까지 온 가족이 여전히 닭갈비 냄새에 군침을 삼킨다. 만드는 사람이 질리지 않는데 30년 단골이라고 그 맛에 질릴 리 없다.
30여 년 거래 중인 농수산물 시장의 신선한 채소와 국내산 닭다리살에 별다른 비법이랄 것이 없다는 양념장을 얹는다. 5~6가지의 기본 재료를 섞어 숙성시킨 양념장은 적당히 매콤달콤한 감칠맛이 스민다. 남녀노소를 불문한 손님들에게 깔끔한 닭갈비의 정석으로 각인되는 배합이다.
처음에는 가슴살도 사용했지만 손님이 떠난 뒤 철판 위에 몇 점 남는 닭갈비가 모두 가슴살인 것을 보고 닭다리살만 활용하는 것으로 재료를 바꿨다. 시대의 흐름에 맞춰 잠시 배달도 생각해봤지만 운영 3일 만에 배달애플리케이션에서 이름을 내렸다. 매장에 찾아온 모든 손님의 철판을 꼼꼼하게 검수하려면 배달 수요를 도저히 맞출 수가 없어서다. 돈을 더 버는 것보다 원조춘천닭갈비 맛을 찾아온 손님에게 생각한 그대로의 음식을 맛보이는 것이 우선이라고 판단했다.
닭고기와 채소, 떡과 우동 등 양념에 잘 볶아진 닭갈비를 하나씩 집어 먹고 준비된 채소 쌈과 함께 입에 넣으면 30년 세월이 무색한 '아는 맛'이다. 볶음밥을 먹기 위해 닭갈비를 먹는 사람도 있을 만큼 재료 맛이 우러난 양념으로 볶고 철판에 눌러 긁어먹는 볶음밥은 빼놓으면 아쉬운 필수 코스다.
단출하지만 닭갈비와 최상의 궁합인 곁들임 재료도 정성이다. 와사비와 식초로 절인 쌈무, 매콤함을 씻어내는 시원한 동치미, 양파 절임과 쌈장 등도 모두 노 대표의 아내 신미경 대표가 직접 만든다. 볶음밥을 만들 때 사용하는 김치도 국내산이다. 조금 더 벌기 위해 부끄러워지고 싶지 않은 꼿꼿함이 오랜 시간을 지탱해온 원조춘천닭갈비의 힘이다. 부모님과 함께 오던 자녀들이 친구들과 찾아오고 그 친구들의 가족이 다시 단골이 된다. 널찍한 공간을 가볍게 오가며 쉼 없이 움직이는 노 대표의 열정이 닭갈비 맛을 완성한다.
/김희란 기자 ngel_ran@nav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