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샵스타그램 - 청주 운천동 젤라또 '아에레(aerer)'

#젤라또 #소르베 #천연재료 #비율 #젤라떼리아

2023.07.25 11:17:18

[충북일보] "여기 흥덕초등학교 앞에 a로 시작하는 집으로 와"

붉은 벽돌로 이뤄진 건물에 푸른 색으로 쓰인 'aerer'를 쉽게 읽을 수 있는 사람은 드물다. 아에레(aerer)는 영어도 아닌 프랑스어라 더욱 그렇다. 이곳에 자주 들르는 손님들은 아에레라는 이름을 알지만 누군가에게 약속 장소를 설명할 때는 a로 시작하는 집이라고 표현하는 경우가 많다.
김지은 대표도 그런 점은 잘 알고 있지만 처음 젤라또 가게를 열면서 선택한 이름을 포기 할 수 없었다. 그에게는 젤라또가 가져다주는 느낌이 아에레 자체였기 때문이다. 아에레는 '환기시키다' '산책하다' 라는 의미를 가진 프랑스어다. 지은 씨에게 젤라또는 그런 디저트다. 한 스쿱의 젤라또가 담긴 작은 컵 하나로 충분히 분위기가 환기된다. 시원하고 달콤한 디저트 한 입이면 익숙한 곳에서 먹어도 가벼운 산책을 하고 온 듯 산뜻한 즐거움을 준다.

흥덕초등학교 앞의 아에레는 5년 간 연인이었던 최성준, 김지은 씨가 부부의 연을 맺으며 새롭게 시작한 가게다. 서울 목동에서 지은 씨가 운영하던 젤라떼리아를 함께 운영해보기로 결정하며 이곳으로 옮겨왔다. 청주에 아무런 연고도 없는 이들이 이 동네를 선택한 것은 우연과 인연이 겹친 선택이었다.
ⓒ아에레 인스타그램
몇 년 전 개관한 미술관에 놀러왔다가 검색을 통해 찾아간 운천동 골목에서 이유 모를 따스함을 느꼈다. 가게 자리를 결정하기 위해 여러 도시들을 찾아다니다 두 사람의 기억 속에서 되살아나 다시 찾은 곳이 바로 이 자리다. 가게 전면 유리를 넘어 보이는 야트막한 산과 작은 학교는 누구에게나 편안한 볼거리로 눈길을 머물게 한다.

서울에서 늘 숫자와 싸우며 일하는 것이 힘들어 보였던 성준 씨에게 젤라떼리아를 함께 운영해보자고 권한 것은 지은 씨다. 100여 가지가 넘는 젤라또를 만들고 판매해 보며 아에레에서 성준 씨의 섬세한 감각이 필요하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재료의 일관된 배합 비율을 조정하는 것부터 매번 다르게 들어오는 과일을 균일하게 후숙시키고 같은 당도를 설정하는 성준 씨의 깐깐한 고집이 아에레의 디저트에 제대로 녹아들었다.
재료마다 젤라또나 소르베로 표현하는 방법은 다양하다. 분쇄와 착즙이 주를 이루는데 입 안에 알갱이나 껍질이 남지 않도록 여러번 걸러내는 것이 아에레의 비법이다. 흔히 천연 재료를 눈에 보이게 하기 위해 껍질을 그대로 넣기도 하지만 입 안에 찌꺼기처럼 남는 것이 싫었던 사람들에게는 산뜻한 마무리까지 만족 그 자체다.

천연재료만을 고집하는 젤라떼리아 아에레에서는 계절의 변화를 눈으로도 볼 수 있다. 봄 참외, 가을 사과, 겨울 딸기 등 제철 과일의 달콤함이 소르베에 신선하게 담긴다. 상큼한 과일이 새로운 형태로 입 안에 녹아들며 계절을 알린다. 아이스크림 소비가 가장 많으면서 과일의 풍성함도 함께 느낄 수 있는 여름에는 훨씬 다양한 맛의 향연이 준비된다.
초당옥수수를 이용한 달콤한 고소함을 시작으로 새콤달콤한 자두와 은은한 단맛의 수박이 시원한 젤라또와 소르베로 재탄생한다. 첨가물이 들어간 아이스크림의 경우 시원하게 먹고도 입 안의 갈증이 남지만 아에레의 젤라또는 깔끔한 맛과 수분을 가득 채우고 흔적도 없이사라진다.

쌀알이 젤리처럼 씹히는 리조는 우유의 고소함을 너무 무겁지 않게 표현해 남녀노소 좋아하는 적당한 단맛의 스테디셀러다. 잘 우려낸 밀키우롱의 은은한 향미도 특별하다.

목이 아파 다른 것은 쉽게 넘기지 못하는 아내를 위해 매번 새로운 맛의 젤라또를 하나씩 포장해 가는 따뜻한 할아버지의 손길이나 초등학생들이 삼삼오오 모여 컵 하나를 사이에 두고 쫀득한 초코 맛을 함께 음미하는 귀여운 장면도 이 동네와 가게에 어울리는 수채화 같은 그림이다. 어느 계절에도 좋지만 여름에 가장 시원할 입 안의 환기가 아에레로의 산책을 부추긴다.

/김희란 기자 ngel_ran@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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