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북일보] 간판도 없는 3층. 주변에 이렇다 할 상권이 있는 것도 아니다. 청주대학교와 동부창고 인근이긴 하지만 북적임과는 거리가 멀다.
지나는 이가 우연히 들어오는 일은 없다. 일면식에 대해 전해 들었거나 알게 된 이들이 일부러 찾아오는 곳이다.
ⓒ일면식 인스타그램
문을 열고 들어서면 한눈에 길게 뻗은 카페 내부가 펼쳐진다. 깔끔하고 세련된 인테리어를 천천히 뜯어볼수록 송종현 대표가 정교하게 계산한 하나하나의 구성을 깨닫게 된다.
입구 쪽 벽면을 채운 LP와 스피커는 주인장의 취향이 담긴 음악을 선보인다. 다른 시선을 등지고 음악에 집중하며 커피를 음미할 수 있는 청음 공간으로 꾸몄다. 재즈부터 팝, 가요, 캐럴까지 종현 씨의 과감한 선곡이 즐거움을 더한다.
공부나 작업에 집중하고 싶은 이들은 개별 콘센트가 마련된 작은 테이블을 택한다. 나란히 놓였지만 개인 공간을 충분히 확보해 방해받지 않을 영역이 보장된다.
여럿이 왔거나 넓은 테이블 공간이 필요한 이들에게 꼭 맞는 테이블도 있다. 작업대와 연결된 바 형태 테이블은 사용감을 고려해 널찍하게 재단했다. 커피를 내리는 과정을 지켜보거나 멍하니 창밖을 보기에도 좋아 가장 많은 이들이 사랑하는 공간이다.
저마다의 위치에 놓인 목제 테이블은 자칫 차가워 보일 수 있는 공간에 묵직하고 따뜻한 느낌을 더한다. 공간을 준비하며 용인까지 찾아가 목재 더미 속에서 몇 겹의 목장갑을 끼고 찾은 나무들이다. 어울리는 결을 가진 폐목재를 골라 싣고 와 목공 작업을 거치는 정성을 들였다. 줄자를 들고 쫓아다니며 다시 태어난 가구는 모두 같은 높이로 맞췄다.
일면식 송종현 대표
수많은 카페를 찾아다닌 경험을 바탕으로 좋은 것을 모으고 싫은 것을 빼다 보니 가장 편안한 의자와 테이블 구성이 나왔다. 맨 위 등받이를 비스듬하게 누인 각도나 앉았을 때 무릎을 이리저리 움직여도 닿지 않는 길이의 합은 당연히 손님들에게도 편안함으로 각인된다.
길게 이어진 통창은 바깥 풍경을 통해 계절감을 느끼고 싶은 종현 씨의 감각에 맞아떨어졌다. 날씨에 따라 다른 액자로 세상을 담는 창문은 하루에도 여러 번 색을 바꾼다. 특히 노을이 지는 시간이면 너 나 할 것 없이 조용히 해를 맞는 손님들이 일면식의 공간을 하나의 그림으로 만든다.
머무르며 즐기는 풍경과 분위기도 좋지만 카페에서 중요한 것은 커피 맛이다. 원두와 용도에 맞는 추출이 관건이다. 마지막 한 방울까지 만족스럽게 비우는 일면식의 필터 커피는 취향에 맞는 원두를 선택하면 눈앞에서 내려준다. 깔끔한 맛과 향으로 찾는 이들이 많은데 원형 얼음과 투명한 잔을 함께 제공해 위스키를 먹는 듯 색다른 재미도 있다.
아무리 배가 불러도 두어 개는 먹을 수 있을 만한 가벼운 디저트류도 종현 씨가 직접 굽는다. 커피 맛을 해치지 않으면서 풍미는 배가될만한 휘낭시에와 까눌레, 마들렌 등에 티라미수를 더해 선택의 폭을 넓혔다. 바질과 토마토로 만든 청으로 시원하게 제공하는 바질토마토에이드는 일면식의 또 다른 시그니처다.
손으로 쓴 메뉴판이나 벽에 걸린 종현 씨의 풍경 사진, 손님들의 역사가 담긴 10권의 방명록 등 일면식을 구성하는 요소는 기본적으로 따뜻하다. 특별한 이벤트보다는 계절과 시간의 변화에 집중해 잔잔히 스며들 수 있는 분위기를 연출한다.
손님들의 성향에 따라 가까이에서 먼저 말을 걸기도 하고 눈치껏 빠져주기도 하는 종현 씨의 배려도 일면식을 한 번만 만나지 않게 하는 편안한 요소다.
단골들만 안다는 '일면식 답다'는 말에 수긍이 간다. '일면식'과 일면식(한 번 만나 인사나 나눈 정도로 조금 앎)밖에 없는 이들도 이 공간이 낯설지 않다. 일면식의 이모저모를 천천히 즐기다보면 금세 젖어드는 친밀감에 놀라게 될 것이다.
/김희란 기자 ngel_ran@nav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