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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웹출고시간2023.08.15 15:12:17
  • 최종수정2023.08.15 15:12:17

송기섭

진천군수

'네가 만일 늙은 어미보다 먼저 죽는 것을 불효라고 생각한다면, 이 어미는 웃음거리 될 것이다. 너의 죽음은 너 한 사람의 것이 아니라 조선인 전체의 공분을 짊어지는 것이다. 네가 항소를 한다면 그것은 일제에 목숨을 구걸하는 짓이다. 네가 나라를 위해 이에 이른 즉, 딴맘 먹지 말고 죽으라.'

이토 히로부미를 처단하고 재판을 받는 안중근 의사에게 보낸 김마리아 여사의 편지로 알려져 있다. 다름 아닌 어미가 자식에게 먼저 세상을 떠나라고 말하는 심정이 어떠했을까· 부모를 두고 편히 눈을 감지 못할 아들을 위해 쓴 글이라고 말하는 사람도 있지만, 그 이유가 어찌 되었든 나라를 위해 일생을 바친 두 모자의 기개, 역사는 현재를 살아가는 후손들이 잊지 말아야 할 소중한 가치이자 자산이다.

진천군에도 대표 독립운동가 '보재 이상설 선생'이 있다.

1905년 의정부참찬을 역임 중이던 이상설 선생은 일본의 저지로 을사늑약 체결을 막지 못해 하염없는 눈물을 흘렸다. 이듬해 북간도로 망명한 그는 서전서숙을 건립해 민족교육을 실시했다. 국권 회복을 위해 고종의 특사로 네덜란드 헤이그 만국평화회의에 참석했지만 실패로 끝났다.

이후에도 최초 독립운동기지인 한흥동 건설, 연해주 의병 단체 13도의군 편성, 권업회, 대한광복군정부 설립 등 목숨이 다하는 그날까지 조선의 독립을 외쳤다.

진천군은 이러한 이상설 선생의 뜻을 기리고 후세의 국민이 이를 잊지 않도록 하기 위해 선생의 생가 인근에 기념관을 건립 중이다.

진작에 이뤄졌어야 할 일이지만 여러 걸림돌로 인해 진행에 난항을 겪다 드디어 올해 준공을 앞두고 있다.

이 과정에서 선생의 행적과 운동 당시의 느낌을 더 생생하게 전하기 위한 유품이 적어 유물 찾기 운동을 대대적으로 벌이기도 했다.

그 이유는 '나는 조국 광복을 이루지 못하고 이 세상을 떠나니, 어찌 고혼인들 조국에 돌아갈 수 있으랴. 내 몸과 유품은 모두 불태우고 그 재마저 바다에 날린 후 제사도 지내지 말라'라는 선생의 유언이 있었기 때문이다.

진천군은 기념관 건립과 함께 이곳이 독립운동의 상징으로 알려지고 많은 사람이 찾을 수 있는 공간으로 만들기 위한 준비를 하고 있다.

얼마 전, 말레이시아의 메르데카 광장을 찾았을 당시 세계에서 가장 높은 국기계양대와 인근 고층 빌딩에 대형 말레이시아 국기가 걸려 있는 것을 볼 수 있었다.

이 부분에서 영감을 얻어 선생의 혼을 굳건히 세울 방안으로 기념관 부지 내에 초대형 국기 게양대 설치를 계획하고 있다.

또 78번째 광복절을 기념해 초대형 태극기도 지역 곳곳에 달았다.

가로 12m, 세로 8m 등 일반 길거리에 다는 것의 100배 정도 크기다.

이를 통해 진천군민들과 방문객들이 나라의 소중함을 한 번 더 생각하는 계기가 되길 기대해 본다.

'역사를 잊은 민족에게 내일은 없다'라는 말이 있다.

나라를 바로 세우고 자긍심을 갖기 위한 개개인 노력뿐만 아니라 이를 도울 수 있는 정부의 노력도 계속되길 78회 광복절을 맞아 바라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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