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경숙의 작가 의식 유감

2015.07.06 13:35:07

윤기윤

기자

"소설은 곧 시대정신의 반영이다. 그리고 한 시대에 가장 살아 있는 양심은 문인이다. 작가의 정신은 곧 소설을 통해 과연 인간다운 삶이란 어떤 것인가. 진정한 삶의 가치가 무엇인지를 보여준다."

고등학교 시절 문학 수업 중 가장 잊혀지지 않는 것 중의 하나가 국어 선생님이 소설의 특성을 설명하실 때였다. 소설에는 허구성과 진실성이 있는데 얼핏 상충되어 보이는 이 둘의 관계를 잘 이해해야 한다는 요지의 말씀이었다. 아마 아이들이 허구의 개념을 거짓과 혼동하고 소설에 담긴 진실성의 의미를 이해하지 못할까봐 염려스러우신 것 같았다.

그 후 유수의 명작들을 읽으며 국어 선생님께서 우리들의 가슴에 심어 주시고자 한 소설의 효용성을 새록새록 깨달을 수 있었다. 게오르규의 '25시'에서 전쟁이 한 선량한 인간을 어떻게 무참히 파괴해 가는가를 깨달았고, 고골리의 '외투'를 읽으며 지극히 평범한 한 인간에 대한 절절한 연민을 느낄 수 있었다. 허구인 소설이 이토록 감동을 주는 것은 곧 작가의 진실된 의식과 가치관에서 비롯되는 것이다. 그런 점에서 이번 신경숙 표절 사태는 작가와 출판사에 대한 깊은 절망감을 갖게 한다.

우선 이들에게는 시대정신, 양심, 진실됨을 찾아볼 수 없다. 신경숙은 '진실 여부와 관계없이 작가에게는 상처만 남는 일이니 대응하지 않겠다'는 오만한 발언으로 모두의 공분을 샀다. 소위 '진실된 소설'을 쓰는 사람이 진실보다는 본인의 상처가 중요하다는 유아적 발언이 황당하기 그지없다. 출판사 창비는 '포괄적 비문헌적 유사성'이니 '부분적 문헌적 유사성'이니 난해한 전문용어를 써서 오히려 웃음거리가 됐다. 그렇게 표현하면 독자들이 찔끔할 줄 알았던가. 출판사와 작가 모두 시대정신에 무지한 채 '문학권력'이라는 성채에 안일하게 안주해왔음이 드러난 것이다.

요즘 독자들의 독서역량과 지적수준, 글쓰기는 전업 작가 못지않은 사람들이 많다. 창비와 신경숙의 독자들에 대한 태도는 마치 '무지몽매한 백성'을 대하듯 안하무인격이었다. 난해한 용어를 무슨 전가의 보도처럼 휘둘러 상식과 진실을 덮으려 했던 출판사나 그저 에두른 변명으로 일관하는 작가나 안쓰럽기는 매한가지였다.

하늘 아래 새로운 것이 없다지만 남의 문장이 탐나면 제 안에 녹여서 다르게 빚어내야한다. 한 단락을 통째로 가져다쓰기도 하고 문장을 그대로 가져와 단어만 살짝 바꾼 것들은 무슨 행태인가. 문단의 일부 원로들은 '국익' 운운하며 신경숙 표절 옹호론을 펴는데 나라밖에서 알까 두렵다. 또한 신경숙이 직전까지 문학상 종신심사위원으로 있던 보수 일간지에서도 작가를 마치 비련의 여주인공처럼 묘사하거나, 작가에 비판적인 이들을 두고 '한 맺히고 배고픈 다수' 혹은 '피해 의식을 가진 집단' 등으로 매도하는 것도 문제의 본질을 모르는 태도다. 세상의 거대한 질서는 상식과 진실로 움직인다. 그 어떤 문학상도 진실을 밟고 올라설 수 없다.

신경숙 작가가 절필 선언을 하지 않았다. 그런데 솔직하고 진심어린 사과와 성찰이 없다면 그가 쓰는 작품의 가치는 계속 의심받을 수밖에 없다. 앞으로 '항아리에 묻는 한이 있어도 글을 쓰겠다'고 했는데 자아도취의 항아리만 끌어안고 글을 쓰는 것이 무슨 의미인지 묻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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