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미의 덕(德)

2013.09.09 15:57:06

윤기윤

前 산소마을 편집장

아침 저녁 바람이 소슬해지며 매미 울음도 많이 잦아들었다. 근래 도심의 매미는 너무 시끄럽다 하여 눈총도 많이 받는 모양이지만 내게 있어 여름 한낮 매미 울음소리는 어쩐지 더위에 균열을 주는 것 같아 좋아한다. 지쳐 늘어지기 쉬운 더운 날씨에 청량감을 부어주는 이온 음료 같다고나 할까.

또한 매미는 추억과 동심의 대상이기도 하다. 초등학교 시절 여름방학을 시작하며 전교생에게 나누어 주던 '방학생활'에는 늘 여름의 무성한 나무숲 속에서 매미채를 들고 뛰어 다니는 아이들의 모습이 그려져 있었다. 흔하게 볼 수 있는 것이 매미였지만, 나무 둥치에 맑고 투명한 날개를 모으고 붙어 있는 모습은 예외 없이 그냥 지나칠 수 없는 유혹이었다.

그런 아비 탓인지 큰아이도 유난히 곤충이나 매미를 좋아하는데 얼마 전 방에 들어가 보니 유지매미 대여섯 마리가 표본 되어 있었다. 사실 내가 어릴 때는 매미 종류까지 알고 있지는 못했는데, 큰애 때문에 다양한 매미 종류를 알게 되었다. 한낮에 제일 우렁차게 들리는 울음소리의 주인공이 말매미로 생김새는 크기만 할 뿐 다른 매미에 비해 별 매력은 없다. 큰애가 제일 좋아하는 매미는 유지매미로 날개가 갈빛 비단 무늬처럼 곱다.

얼마 전 책을 뒤적이다 보니 매미는 조선시대 임금의 관모, 즉 익선관(翼蟬冠)에도 앉아 있었다. 가운데 글자가 매미 선(蟬)자인 것이다. 임금의 관모에 하필 왜 매미일까 궁금증이 일었다. 사군자(四君子)나 송죽(松竹)처럼 옛 선비들이 칭송해 마지않던 자연물도 아닌데 별 의미를 두지 않았을 것 같은 매미를 임금의 물건에 썼다는 것이 놀라웠다.

매미는 오덕(五德)이 있는데 문(文), 청(淸), 염(廉), 검(儉), 신(信)이다. 입이 두 줄로 뻗은 것은 선비의 늘어진 갓끈을 상징하여 '학문'을 뜻하며, 평생을 깨끗한 수액만 먹고 살기에 '맑음'이 있다. 사람이 가꾸는 곡식이나 채소를 건드리지 아니하므로 '염치'가 있는 것이고, 자신만의 집을 짓지 않고 그저 나무에 깃들어 사므로 '검소함'이 있다. 또한 날이 춥기 전 때맞춰 생명을 거둘 줄 아니 '신의'가 있어 그 덕을 기렸다.

이러한 오덕(五德)이 있기에 임금의 관모에 매미 날개 모양을 만들어 넣었던 것이다. 그러고 보면 옛 사람도 매미의 습성이나 생태에 면밀한 관심을 가졌던 모양이다. 하기야 한여름 그토록 뜨겁게 자신의 존재를 알리니, 아무리 나무에 붙어 표식이 잘 나지 않는다 한들 눈에 안 띌 수 없었을 것이다.

나는 매미의 이 오덕(五德)에 두 가지를 더하여 칠덕(七德)을 기리고자 한다. 우선 무기력한 한여름 더위를 쫓아내는 폭포수 같은 소리, 즉 성(聲)이요, 아이들에게 천진한 동심을 발현케 하여 주니 아이 동(童)을 부여하여 주고 싶다.

이제 한낮의 말매미와 애매미는 흙으로 돌아갔지만 늦털매미는 늦가을까지 풀 섶에서 가을의 전령사 귀뚜라미 여치 등속과 더불어 노래를 그치지 않을 것이다. 11월의 늦은 가을밤 풀벌레 울음소리에 귀 기울이게 되면, 그 중에는 아직 자신만의 여름 아리아를 계속하고 있는 매미도 있다는 것을 기억하시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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