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 대한민국

2013.12.16 14:30:56

윤기윤

前 산소마을 편집장

애국(愛國)은 억지로 안 된다. 아무리 '나라사랑'을 강조해도 어떤 뚜렷한 동기나 특별한 감흥 없이는 가슴에 와 닿지 않는다. 우리 7080세대는 어려서부터 '애국애족'에 대한 이념에 길들여져 왔다. 출근길이나 등굣길에 아침 태극기를 게양하거나, 저녁 무렵 하강하는 순간은 가던 길이나 하던 일을 멈추고 국기에 대한 예의를 표했다. 그리고 스피커에서 울려 퍼지는 '나는 자랑스러운 태극기 앞에∼'로 시작하는 '국기에 대한 맹세'를 귀에 못이 박히도록 들어야만 했다. 그것이 결코 나쁘다는 이야기는 아니다. 지금은 그런 국가적 강요가 없으니 지난날 추억의 산물로 아련하게 남았다.

지난 주, 중국 상해를 다녀왔다. 우리 일행은 아침 일찍 '수향(水鄕)의 도시'로 유명한 주장(周庄)으로 향했다. 하지만 지독한 안개 덕분에 고속도로가 막혀 일행은 다시 길을 돌려와야만 했다. 갑작스런 일정 변경으로 버스 안에서 갑론을박으로 한참일 때, 누군가가 제안을 했다.

"이왕 상해에 왔으니, 상해임시정부청사를 한 번 가봅시다. 역사적 의미도 있으니 괜찮지 않을까요·"

"허름한 기념관에 불과해요. 뭐 볼 것이 있다고…."

안개 때문에 빈 오전 일정을 고민을 하는 중, 일행들의 의견이 엇갈리자 가이드는 새로운 제안을 내놓았다.

"상해임시정부유적지가 있는 곳이 바로 '신천지'라는 곳입니다. 서울의 청담동 거리라고 보시면 될 것 같아요. 변화하는 중국을 느낄 수도 있어요."

가이드의 주장대로 상해임시정부청사도 보고 '신천지'도 볼 수 있다고 하니 꿩 먹고 알도 먹는 셈이었다. 덕분에 의견일치를 보고 길을 되돌려 다시 상해로 돌아왔다.

상해의 신천지(新天地)는 문자 그대로 새로운 세상이었다. 유럽식 건축물에 들어선 매장에는 명품들로 넘쳐났다. 그 가운데 당당히 우리나라의 삼성 스마트폰 매장도 같은 반열에 위치해 있어 마음이 뿌듯했다. 거리에 다니는 사람들도 허름한 과거 중국의 모습과는 확연히 달랐다. 우리가 찾던 상해임지정부유적지는 신천지와 도로 하나를 경계로 초라한 모습으로 우리를 반겼다. 무심코 지나간다면 그냥 지나치기 쉬운 곳이었다. 입장료 20위안(약 3,800원)을 내고 입구로 들어섰다. 그런데 들어서는 순간, 나 자신도 알 수 없는 뜨거움이 밀려들었다. 상해임시정부 당시를 재현해 놓은 김구선생의 집무실, 안창호 선생의 글, 대한독립선언서, 소박한 회의실, 협소한 부엌, 윤봉길의사의 흉상과 애국지사들의 빛바랜 사진들…대한민국의 시원(始原)에서 뿜어져 나오는 웅혼한 기운으로 어떤 뭉클한 감정들이 차올랐다. 아마도 한국에서 중국여행을 온 것 같은 어린 관람객이 엄마에게 물었다.

"엄마, 여기가 우리나라 전의 우리나라야·"

아이의 말 그대로 이곳은 바로 '우리나라 전(前)의 우리나라'였다. 대한민국의 모태(母胎)였다. 천 마디의 애국을 떠들기보다, 이곳에 와서 느끼는 현장의 묵언이 진정한 애국심의 발로가 되는 것은 아닐까 생각해보았다. 왜냐하면 나부터, 함께 온 일행들이 모두 하나같이 하는 말이 있었다.

"정말 잘 와봤어. 애국심이 저절로 생겨."

비록 허름하고 초라하지만, 우리에게는 더없이 소중하고 자랑스러운 대한민국 상해임시청사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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