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의 선물

2014.02.10 17:35:56

윤기윤

前 산소마을 편집장

입영통지서가 날라 왔다. 아들이 벌써 군에 갈 나이가 된 것이다. 순간 가슴이 덜컹 내려앉았다. 50세가 넘은 이즈음에도 나는, 다시 군대에 가는 꿈을 종종 꾸기도 한다. 우스꽝스럽지만 서류가 잘못되어서 다시 입대해야 한다는 통지서를 받기도 하고, 제대를 앞둔 말년병장으로 변한 모습으로 등장하기도 한다. 세월은 참으로 빠르다. 어느덧 한 세대를 넘어 나의 입영통지서가 아닌, 아들의 입영통지서를 읽다 보니 마냥 어리고 철없어 보이는 아들에 대한 염려가 밀려왔다. 동시에 '남자들은 군에 갔다 와야 철든다'라는 말처럼 '한 번쯤은 갔다 와야 정신 차리겠지'라는 마음이 슬며시 들기도 한다.

군대란 우리나라 젊은 남자라면 누구나 예외 없이 거쳐야 할 과정이며 의무조항이다. 하지만 요즈음 젊은이들은 군대에 입대하는 것을 무척이나 꺼린다. 사실 나의 아들도 마찬가지다. 그런 그가 뜻밖의 선언을 했다. 대학에 입학하자마자 지원해서라도 남보다 일찍 군대를 다녀오겠다는 것이다. 사실 아들의 심리 이면에는 '이왕 맞을 매라면 빨리 맞고 오겠다'는 뜻이 내포되어 있었던 것이다. 가기 싫은 군대를 억지로 할 수 없이 가야만 하는 우리의 현실이 못내 안타까웠다.

얼마 전, 신문에 바둑 기사가 실려 흥미롭게 읽다가 의아한 생각이 들었다. 한국기원을 대표하는 인사와의 인터뷰 기사였는데 한국 바둑이 과거에 비해 중국에 밀리는 이유가 '병역혜택'이 줄어들어서라는 주장이었다. 그는 "과거에는 국제대회 준우승자까지 군 복무를 면제받았는데 2009년부터 '메달획득'으로 바뀌었기 때문"이라고 진단했다. 통상적으로 바둑 기사의 전성기는 10대 후반부터 20대까지로 보는데 한창 기량이 향상될 나이에 군대에 가게 되면서 경력이 단절된다는 거다. 병역혜택이 기량향상의 동기부여가 된다는 주장은 어쩐지 씁쓸하다.

1950년대 중동전쟁 때, 미국의 하버드대학에 재학 중인 두 젊은이가 있었다. 한 명은 이스라엘 유학생이었고, 다른 한 명은 아랍에서 온 유학생이었다. 중동전쟁이 발발하자, 두 유학생은 똑같이 기숙사에서 짐을 꾸렸다. 함께 기숙했던 미국인 동료가 그들에게 짐을 꾸리는 이유를 물었다. 아랍계 학생은 "혹시 본국에서 귀국하라는 요청을 올까 두려워 다른 곳으로 이사를 하려고 한다"라고 말했다. 다른 이스라엘 학생은 "전쟁이 났으니 서둘러 귀국해서 동참해야 한다"라고 말했다고 한다. 그래서 미국인 동료는 이 전쟁은 보나 마나 이스라엘이 승리할 것이라고 판단했다고 한다.

오늘날, 우리나라의 현실은 어떠한가. 외국에 있는 우리나라 유학생들은 이 땅에서 전쟁이 일어난다면 어떤 태도를 보일 것인지 걱정스럽다. 당장 내 아이부터 군대에 가기 싫어하니 자괴(自愧)할 뿐이다. 입대를 앞둔 이 땅의 젊은이들에게 박노해 시인의 말을 들려주고 싶다.

"살다 보면 상처가 최고의 경쟁력이다. 가장 힘센 것은 역시 슬픔인 것 같다. 삶은 기적이다. 우리는 인생을 선물 받았다."

세상을 살다 보면 통과의례(通過儀禮)라는 것이 있다. 의지와 상관없이 반드시 넘어야 할 관문이 있는 법이다. 상처나 슬픔도 살다 보면 시인의 말처럼 어떤 시련을 극복하게 하는 훌륭한 에너지가 되기도 한다. 군대라는 삶 역시 귀한 인생의 선물로 여겨주기 바라는 마음 간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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