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여름 밤의 꿈

2014.08.11 16:54:34

윤기윤 전문기자

"위스키 원액 일부는 통에 스며들고 일부는 증발됩니다. 그렇게 날아간 원액을 '천사의 몫'이라 부릅니다."

고급 위스키 '로얄 샬루트'에 종사하는 어느 마스터 블렌더의 말이다. 어딘가로 날아간 원액을 '천사의 몫'이라 한다니……. 국립청주박물관에서 열린 '한여름 밤 조성모 감성콘서트'의 조성모 노래를 들으면서 느닷없이 이 말이 떠오른 것은 무척 뜬금없는 것일 수도 있겠다. 그러나 한여름 저녁의 7시 30분, 낮이 밤으로 바뀌는 그 마법 같은 시간이다. 산 그림자에 기대어 나무 잎들이 서로 스쳐 일으키는 바람결과 함께 들은 조성모의 목소리는 천사의 몫으로 날아온 위스키 원액처럼 한여름 밤을 취하게 하는 것이었다. 어딘가에서 그의 달콤한 목소리가 빚어낸 보이지 않는 정령들이 바람과 함께 주변에서 날고 있을 것만 같은 노래의 향연이었다.

관객은 비단 사람들뿐만이 아니었다. 풍성한 머리숱의 느티나무에도, 분홍 입술 선명한 배롱나무에도, 둥두렷이 걸려 있는 앞산의 달에도, 사람들 사이를 뒤적이며 돌아다니는 바람결에도 노래 소리가 스미어드는 듯 했다.

그동안 많은 공연을 관람했지만 자연 속에서 이렇듯 아늑하고 평화로운 정취의 공연을 접하기는 처음이었다. 1981년 사이먼 앤 가펑클의 뉴욕 센트럴 파크 공연 실황을 텔레비전으로 본 적이 있다. 가수의 소탈한 모습과 함께 자유롭고 편안해 보이는 관객들의 모습이 꽤나 인상적이었던 기억이 있다. 눈을 감고 잔디밭에 서서 부드러이 몸을 흔들거나, 연인의 어께에 기대어 쉬듯 음악을 음미하는 모습에서 한층 세련된 공연 문화를 만날 수 있었으니까.

청주박물관 개관 이래 하루에 최대 관객인 6천명이 모였다는 이 날의 콘서트는 대개 가족과 연인 위주의 관객이었다. 공연 시작 전 주변에서 절로 들리는 말들에 귀를 기울여보니 서울이나 대전 등 다른 도시에서 온 사람들도 꽤 있었다. 공연 시작 세 시간 전에 도착하여 '맥간아트공예전' 등 박물관의 전시를 둘러보고 문화 공연에 대하여 꽤나 관심과 정성을 기울이는 양 행세하려던 내 마음이 살짝 무색해지는 순간이었다.

그동안 정적인 공간으로만 치부되어 왔던 박물관이 이렇듯 생동감 넘치는 기획 공연을 주최함으로써 지역 시민들 뿐 아니라 타지역 사람들과의 대면 시간을 늘리는 것 또한 무척 의미 있는 일이라고 생각한다.

돗자리를 펴고 모여 앉은 가족 중에는 대여섯 살짜리 어린 관객들도 많았다. 그러나 아이들 또한 내가 우려했던 것과 달리 돌아다니거나 수선을 피우는 일이 없었다.

"이 초록의 나무들과 바람결이 제가 꿈꾸던 그런 무대네요."

가수 조성모의 인사말도 꼭 형식적 멘트만은 아닌 것 같았다.

점차 어둠이 내리니 은은한 조명이 비추이는 나무들의 실루엣이 햇빛 속에서와는 다른 색다른 멋을 뽐낸다. 진초록의 잎들도 노래 소리를 한껏 빨아들였다가 다시 내뿜어 일렁이는 것만 같았다. 자연과 인간의 조화가 빛나는 순간이었다. 한 여름 밤에 꾼 달콤한 꿈이었다.

돌아오는 길에 공연에서 들었던 노래를 흥얼거려 본다.

'부는 바람 속에 아련하게 보이는 그댈 느낄 수가 있는데

그대의 향기로 날 채워주던 이 사랑을 사랑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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