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녀리의 죽음

2013.04.22 19:49:53

윤기윤

前 산소마을 편집장

아기고양이가 태어난 지 이십여 일이 되었다. 지난 4월 1일 만우절에 정말 거짓말처럼 세 마리의 새 생명을 얻었다. 셋이 그 작은 머리들을 서로 맞대고 누워 있는 모습은 정말 앙증맞게 귀여웠다. 그 중 하나는 다른 두 마리보다 약간 작다 싶더니 갈수록 격차가 벌어졌다. 열흘이 지났을 때는 서로 비교하기가 무색할 만큼 한 마리는 애달플 정도로 작디작았다.

"쯔쯧, 한 마리는 무녀리구나."

집에 다니러 오신 어머니가 혀를 차셨다.

"무녀리가 뭐예요 할머니?"

"원래는 여러 새끼들 중 제일 처음 나온 것을 무녀리라고 하는데 작고 약한 것을 무녀리라고 하는 거야."

처음 엄마의 몸을 열고나오니 '문열이(무녀리)'라고 하나 보았다. 아이는 무녀리가 불쌍하다고 어미와 새끼들의 보금자리에서 꺼내 따로 자리를 마련해 우유를 담아 앞에 놓아 주었다. 하지만 무녀리는 입을 적시는 둥 마는 둥 제대로 빨아먹지 못했다. 그런데 잠깐 한눈을 판 사이 무녀리가 감쪽같이 없어졌다. 아이는 울상이 되어 온 집안을 뒤졌다. 그런데 그동안 새끼들만 보듬고 젖을 먹이던 어미 코코가 자꾸 아이의 방을 들락거렸다. 가만히 거동을 주시했더니 아이의 조금 열려진 옷장 안으로 살짝 뛰어 올라 들어갔다. 옷장 안 저 안쪽에 무녀리가 누워 꿈틀대는 것이 보였다.

아마도 어미는 무녀리의 안위에 위협을 느낀 모양이었다. 사람들이 따로 꺼내 두는 것을 보고 새로이 안전하게 키울 장소가 필요하다고 여긴 것 같았다. 우리는 무녀리를 원래의 장소로 옮겨주고 다시는 꺼내지 않았다.

토실토실한 다른 형제들이 제법 기어 다니기 시작했을 때도 작은 무녀리는 제자리에서 부들거리며 그저 꼼지락대기만 했다. 아무래도 다른 덩치들에게 밀려서 젖을 제대로 못 얻어먹는 모양이었다.

무녀리를 병원에 데려가 봐야 되겠다고 마음먹고 있던 차에 집에 들어오니 아이가 코코의 보금자리에 코를 박고 들여다보고 있다가 눈물 머금은 눈으로 돌아보았다.

"아빠, 무녀리가 죽었어요."

아이는 다시 혼잣말처럼 중얼거렸다.

"차라리 태어나지 말든지, 아니면 바로 죽든지, 왜 지금까지 버티다가 죽었는지 몰라. 정들게 해놓고…"

나 또한 뭐라고 쉽게 말을 잇지 못한 채 새끼들을 들여다보았다. 어미 코코가 죽은 무녀리를 계속 핥아대고 있었다. 죽은 것을 아는지, 아니면 그렇게 하면 살아날 것 같아서 그러는 것인지 정신없이 온몸을 혀로 핥아 주었다. 오늘이나 내일쯤 무녀리를 동물병원에 데려가 보아야겠다고 마음속으로 생각하고 있었다. 그런데 하루 이틀 미루다 때를 놓친 것이다. 진작 병원에 데리고 갔더라면 목숨을 건질 수 있었을 지도 모를 일이다. 괜한 후회가 밀려들었다.

아이와 집 근처 공터에 무녀리를 묻어 주고 집에 들어오니 나머지 새끼들이 또 없어졌다. 어미가 새끼들을 또 옷장 안에 숨겨 놓은 것이다. 새끼 하나를 잃었으니 아마 인간들의 눈에 띄지 않게 하는 것이 최선이라고 마음먹은 것 같았다.

어찌하였든 집안에 태어난 한 생명도 제대로 돌보지 못했으니, 고양이의 신임을 못 받아도 어쩔 수 없는 신세가 되고 말았다.


이 기자의 전체기사 보기 →

<저작권자 충북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금지>


93건의 관련기사 더보기





충북일보 / 등록번호 : 충북 아00291 / 등록일 : 2023년 3월 20일 발행인 : (주)충북일보 연경환 / 편집인 : 함우석 / 발행일 : 2003년2월 21일
충청북도 청주시 흥덕구 무심서로 715 전화 : 043-277-2114 팩스 : 043-277-0307
ⓒ충북일보(www.inews365.com),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금지.
Copyright by inews365.com, Inc.