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물 파기

2013.02.04 15:53:23

윤기윤

前 산소마을 편집장

'지나가버린 / 어린 시절엔 / 풍선을 타고 / 날아가는 예쁜 꿈도 꾸었지/ 노랑 풍선이 / 하늘을 날면 / 내 마음에도 아름다운 기억들이 생각나'

동방신기가 부르는 '풍선'이란 노래다. 사실 이 노래는 동방신기 이전 우리시대에 '다섯 손가락'이란 그룹이 불렀던 추억의 가요다. 동방신기가 다시 리바이벌한 곡이다. 그래서인지 선율과 가사가 귀에 살갑게 들어왔다.

자신의 방문을 꼭 닫고 헤드폰을 쓴 고3 수험생 아들이 목이 터져라 '풍선'을 불러댄다. 이맘때의 예비 고3 수험생이라면 도서관과 학원을 드나들며 촌음을 아껴 코피 터지게 공부해야 할 귀한 시간이다. 그런데 기타 치며 노래연습이라니. 한량이 따로 없다. 더구나 노래에 타고난 재능이라도 보인다면, 마음껏 밀어주겠건만 아들은 노래에 별반 소질이 없어 보인다. 그럼에도 아들은 어느 날 가수에 필이 꽂혀 고교시절 내내 노래를 불렀다.

"아빠, 어떤 일이든 노력하면 반드시 성공할 수 있지요?"

아들의 질문에 차마 '그렇다'라고 대답할 수 없었다. 다만, "자신의 재능이 무엇인지 발견하고, 그 재능을 기반으로 노력하면 성공할 수 있다."라고 원론적인 이야기만 들려주었다. 사실은 "넌 노래에 소질이 없으니, 다른 것을 찾아보라"라는 의미였지만, 아들의 노래사랑은 일편단심이었다. 그런데 엉뚱하게도 아들에게는 또 다른 욕심도 있다. 무턱대고 스무 살이 되면 책 한 권을 꼭 내겠다는 것이다. 소위 말해 '가수와 작가'를 겸직하겠다는 의미였다.

어느 날, 새벽 우연히 화장실을 가다 전등 아래 홀로 자판을 두드리고 있는 아들의 모습을 보았다. 컴퓨터를 미처 끄지 못하고 잠이 든 아들 대신, 전원을 끄려다 우연히 아들의 글이 눈에 들어왔다. 방황하는 청소년의 심리를 묘사한 소설이었다. 글의 흐름이 자연스러웠고 문체에서 제법 품격이 느껴졌다. 깜깜한 바다를 항해하다 겨우 발견한 등대의 불빛처럼 희망이 보이는 듯 했다. 아들의 글을 읽고 난 뒤, 솔직히 가수보다는 글에 재능이 있으니 그쪽으로 매진해보라고 은근히 권해 보았다. 선천적인 재능을 말하자면, 노래보다는 글 쪽이 백 번 천 번 가능성이 보였다. 글을 써서 직업으로 삼고 있는 양쪽 부모의 유전적 토양에 노력을 기울인다면 괜찮겠다 싶었다.

"사람은 성공하려면 한 우물을 파야 된다."

"참, 아빠는 여러 곳을 파야 물이 나올 가능성이 더 크다니까."

일본만화 다카하시 루미코의 '도레미하우스'에는 우유부단한 주인공 고다이가 등장한다. 어느 날 고다이의 할머니가 하숙집을 찾아와 하숙집 주인 쿄코(고다이가 사랑하는 여인)에게 들려준 말이다.

"고다이는 어릴 적 한여름에 두 개의 아이스크림을 양손에 들고 어느 것을 먹을까 망설이고 있었어. 결국 고민만하다 모두 녹아버려 울고 말았지."

아들의 모습이 꼭 만화 주인공 고다이와 닮았다. 한여름 금방 녹아버리는 아이스크림처럼 지금 아들은 빠르게 지나가버릴 황금의 시간을 제대로 붙잡고 나아가지 못하는 것 같아 안타깝다. 하지만 어쩌겠는가. 둘 다 녹아버리면 다시 찾으면 될 일이다. 이곳저곳 파다 자신의 우물을 발견하는 것이 또한 인생이 아니던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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