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 그리고 대청호

2013.09.23 14:34:30

윤기윤

前 산소마을 편집장

지난 3월 봄이 오는 대청호를 둘러본 충북도지사는 "유람용 나룻배인 대청호 도선 운영 대신 친환경 생태 탐방선을 도입하는 방안을 추진하고 있다"고 말했다. 충북 청원군에 위치한 대청호에 수질과 생태 환경을 탐방하는 교육용 선박인 '생태 탐방선'을 도입하는 방안이 추진된다는 것이다. 청원군 문의 선착장을 중심으로 청남대, 인공 수초 재배섬, 문의 취수장 등을 둘러보는 항로를 구상 중이라는 설명이다. 어쩐지 그 소식이 반가웠다.

가을이 오는 지난 주말, 대청호를 갔다. 조그만 배를 띄우는 나루터 입구에 누군가가 '회상의 문(門)'이라 적어 놓았다. 대청호 맞은 편 산자락에 산소자리가 있는 사람들을 위해 한시적으로 나룻배를 운행했다고 한다. 그런데 왜 '회상의 문'이었을까. 뱃사공은 '호수를 건너 다녀오면 그 의미를 알 수 있을 것'이라며 알듯 모를 듯한 미소로 답했다.

전경린의 '염소를 모는 여자'라는 소설에는 이런 구절이 나온다. "수몰 지역에 가면 물 속에 모든 게 그대로 보존되어 있으리라고, 마루 밑 아무렇게나 벗어던진 신발과 한쪽 벽 위에 걸린 가족사진…급히 몸만 빠져나간 듯 세간이 그대로 보존되어 있어서 금방이라도 외출했던 사람들이 돌아와 누군데 남의 집을 들여다보고 있느냐고 물어올 것만 같은 그런 집들. 수몰지역에 가면 그런 마을이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나룻배는 유리처럼 매끄러운 물살을 헤치며 천천히 댐 안쪽으로 지나간다. 이윽이 손으로 물살을 헤치며 그 안을 들여다본다. 마을을 가로지르며 뻗은 시냇가 빨래터, 부엌, 큰 방과 외양간, 돌 담 너머로 컹컹거리는 누렁이의 소리도, 어르신 기침소리마저도 그대로 물에 잠겨 있는 듯 했다. 뿌옇게 동터 오는 새벽풍경처럼 마을은 상상 속에 잠겨 아른아른 모습을 드러낼 듯 했다. 커다란 수족관에 담겨진 인공 세트장처럼 마을은 물고기들의 차지가 되어 있을 것이다. 바람에 물결이 일렁이면 상상의 마을도 배가 지나가면서 파문을 일으키며 사라져갔다.

배에서 내려 다시 태화정 아래쪽에 나무로 만든 계단을 따라 걸었다. 내려가면 바로 대청호 물가에서 발밑을 적실 수 있다. 아마도 만수(滿水) 때에는 이곳까지 물이 차올랐으리라. 나무계단 끝과 대청호의 사이에는 수많은 갈대숲이 장관이다. 마치 커다란 파도가 일렁이듯, 바람이 세차게 불자 어김없이 물결이 일렁이며 서걱거리는 소리가 쓸쓸하면서도 청량한 느낌이다. 마침내 대청호까지 쓸려간 바람들은 잔물결을 일으키며 상념에 잠기게 한다.

"참나무 생강나무 자귀나무 원추리 은방울꽃, 무성한 무인도에 밤이면 작은 별들 내려와 잠자는 곳. 이른 새벽 새들 지저귐에 눈뜬 별들 하늘로 돌아가고 진한 그리움만 남아 있는 섬."

김종익 시인의 '대청호 가는 길'을 가만히 읊조려본다.

갈대숲을 헤치고 대청호 물을 길어 올려 보았다. 두 손을 모으니 그대로 작은 두레박이 되었다. 손가락 사이로 물살들이 빠져나가면서 빛과 만나 보석처럼 반짝인다. 손 바가지에 담긴 대청호는 작은 호수처럼 고요한 일렁임을 낸다. 투명한 물길 아래로 보이는 손금이 지나온 삶의 여정처럼 고단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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