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모의 마음

2013.05.06 13:59:33

윤기윤

前 산소마을 편집장

얼마 전 아내가 대대적으로 베란다 청소를 하더니 새장 두 개를 들고 나왔다. 그러더니 주섬주섬 외출 채비를 하며 처가에 갖다 놓고 오겠다는 것이었다. 나는 그걸 어디다 또 쓸 일이 있겠냐며 버리라고 했지만 아내는 극구 반대를 하며 기어이 나섰다.

새장은 아이들이 앵무새를 기르다 남은 물건이었다. 새장 뿐 아니라 베란다에는 곤충이나 동물 마니아인 큰애가 기르던 구피 수족관, 사슴벌레 키우던 크고 작은 플라스틱 통들이 즐비했다. 그것들을 버리지 못하는 이유는 언제 어느 때 다시 사용하게 될지 모른다는 이유였다. 지금은 아이가 소나무 분재와 새우 키우는 것에 마음을 빼앗겨 그걸 키우느라 잠시 미뤄둔 것이지 언제 어느 때 다시 새나 장수풍뎅이를 키울지 모른다는 것이었다. 그런데 그 중에서도 새장은 부피가 너무 커 베란다에 그냥 두기에는 불편하니 처가의 지하실이나 이층 창고에 두고 오겠다는 것이었다.

"새장도 아직 새 것이고 그냥 버리기 너무 아깝잖아."

"장모님이 싫어하실 터인데…"

처가는 단독주택이라 아파트보다는 안 쓰는 물건을 놓을 만한 장소가 비교적 여유로웠다. 이층의 창고 겸용 다락방도 있고, 지하실도 있었다. 또 평소 쓰지 않는 방에 옥상도 있었기에 우리 뿐 아니라, 처제, 큰처남, 작은 처남 등 형제자매들이 한 번 이사할 때마다 반드시 무슨 물건이든 이삿짐센터를 방불케 할 정도로 물건이 들어왔다. 그래서 장인 장모님이 크게 내색도 못 하시면서 힘들어 하셨다. 나 또한 차에서 떼어낸 의자 세트를 처가 옥상에 갖다 놓은 전력이 있는지라 아내가 또 물건들을 갖다 놓겠다는 것이 영 마음이 편치 않았다. 더구나 사오 년 전 쯤 아파트에서 키우던 우리 진돗개를 성견이 되기 직전 처가에 맡겨, 지금까지 키워 주시고 있는 터라 늘 죄송한 마음이었다. 장인은 개를 좋아하시는 편이지만 장모님은 개를 아주 싫어하시기 때문이었다.

처가에 갔던 아내가 들어오더니 쿡쿡 웃음을 터트린다.

"아유, 도둑질하는 사람은 어떻게 하는지 몰라. 물건을 몰래 갖다 놓고 오는 것도 이렇게 떨리네."

"아니 왜? 아무도 안 계셨어?"

"그게 아니라 아버지 혼자 계시길래, 바깥 계단으로 돌아가서 이층 창고에 몰래 넣고 보자기 씌워 놓고 왔지. 뭐라 그러실까봐. 이것저것 물건이 많으니까 당분간 모르실거야."

그러더니 조금 있다 처가에서 걸려온 전화를 받으며 간신히 웃음을 참는 목소리로 "응, 엄마 이웃에 마실 가셨다고 해서 바빠서 그냥 왔어요"하며 딴청을 부린다. 아마 왜 왔다가 엄마도 안 보고 그냥 갔냐고 장모님께서 전화를 하신 것 같았다.

지난 주 어버이날을 앞두고 처가에 가니 장모님이 웃으면서 농담 삼아 말씀하신다.

"퇴물들 사는 집이라고 퇴물만 갖다 놓는구먼."

"엄마, 새장 갖다 놓은 것 보셨어요?"

아내가 멋쩍게 웃으며 대꾸하자 장모님이 일침을 날리신다.

"그려, 보관하려면 새똥이라도 잘 닦아놓든지, 쯧쯧… 뽀얗게 잘 닦아 놨다."

오래되어 낡고 허름한 처갓집은 어쩌면 자식들의 애환(哀歡)을 말없이 받아주는 넉넉한 부모님 품 같은 것이 아니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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