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북리 망향가

2014.03.24 13:22:23

윤기윤

前 산소마을 편집장

'댐은 아름다웠습니다. 배를 띄우는 나루터 입구에 "회상의 문"이란 팻말이 궁금증을 자아내게 합니다. 왜 "회상의 문"일까요? 나룻배는 물살을 가르며 대청호를 지납니다. 물에 손을 담그다 보니, 희미하게 물밑 세상이 조금씩 눈에 들어옵니다. 아아, 그곳은 30년 전, 수몰된 마을이었습니다. 마을을 가로지르며 뻗은 시냇가 빨래터, 돌다리, 부엌, 큰 방과 외양간, 돌담 너머로 컹컹 거리는 누렁이의 소리도, 풀벌레 소리도, 어르신 기침소리도 그대로 물에 잠겨 있었습니다. 뿌옇게 동터오는 새벽처럼 마을은 아득한 채로 있었지만, 사람은 보이지 않았습니다. 마치 커다란 수족관 속에 인공으로 만들어 놓은 물고기 집처럼 오밀조밀합니다. 푸른 이끼가 달라붙어있는 붉은 우체통 너머 작은 건물… 이곳 몽환의 마을을 알려주는 우체국의 현판이 물결에 아른거립니다. <문의우체국>'

어느 시인의 글인지, 수필인지는 기억이 없습니다. 이 글을 읽고 난 뒤, 대청호를 만날 때마다 물밑에 수몰된 문의마을이 환영처럼 보이는 듯 했습니다. 나의 고향은 아니었지만, 실향민의 가슴을 생각하니 명치끝이 아파옵니다. 고은 시인도 문의마을의 아픔을 시로 표현했지요.

'겨울 문의에 가서 보았다/ 거기까지 닿은 길이/ 몇 갈래의 길과/ 가까스로 만나는 것을/ 죽음은 죽음만큼 길이 적막하기를 바란다./ 마름 소리로 한 번씩 귀를 닫고/ 길들은 저마다 추운 쪽으로 뻗는구나/ 그러나 삶은 길에서 돌아가/ 잠든 마을에 재를 날리고/ 문득 팔짱 끼어서/먼 산이 가깝구나./ 눈이여 죽음을 덮고 또 무엇을 덮겠는가'

- 고은의 <문의(文義)마을에서>

고향이란 말만 들어도 그립고 아련합니다. 어머니의 뱃속에서 나오자마자 처음 눕혀진 땅이 고향입니다. 그러므로 고향은 어머니와 같은 의미랍니다. 어릴 적 추억이 고스란히 보존된 곳이기도 합니다. 미물인 연어도 낯선 바다에서 몇 년을 보내다 알을 낳을 때가 되면 수천 킬로 떨어진 곳에서 다시 모천(母川)으로 돌아와 알을 낳고 죽을 만큼 소중한 곳이 고향입니다.

지난 3월18일 청주시 외북리 마을에 첫 공사가 시작되었습니다. 마을사람들은 고향의 모습 하나라도 더 마음에 담으려는 듯 마을이 가장 잘 보이는 언덕에 모여 공사현장을 지켜보았습니다. 외북리 마을은 2008년 산업단지인 '청주테크노폴리스' 조성사업 지역으로 편입되었고, 오랜 협의 끝에 첫 공사가 시작된 곳입니다. 삶의 보금자리였던 오래된 집, 꿈을 키우던 학교, 늘 푸르던 문전옥답, 앞산의 진달래, 냇가의 조약돌, 무엇 하나 잊어버리기엔 너무나 소중한 것들입니다.

"이 시대를 원망하랴. 시장님을 원망하랴. 이웃사촌 내 형제야 나 어디로 가야하나. 아파트로 가야하나. 주택으로 가야하나. 이리저리 돌아봐도 외북리만 못하더라"

가수 문주란의 노래 '유정천리'를 즉흥적으로 개사해서 외북리 마을주민 김순남(71)씨가 한 곡조 뽑습니다. 고향을 잃어버린 아픔이 그대로 전해져 왔습니다. 그녀가 읊조리듯 부른 노래는 그대로 '외북리 망향가'가 되었습니다. 문의마을 주민들이나, 외북리 마을 주민들의 아픔은 그 어떤 물질적 보상으로도 치유될 수 없는, 산업화 문명화의 그늘인 셈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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