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소년 삶의 공간

2014.12.01 15:49:50

윤기윤

"아이를 나무라다가 화난다고 아이를 그대로 두고 부모가 집을 나오면 안 됩니다. 차라리 애가 나가게 해야지요."

얼마 전 지인과 사춘기 자녀의 교육문제를 얘기하던 중 다소 의아한 말을 들었다.

"그래도 애가 가출하게 할 수는 없잖아요. 어른들이야 잠깐 한숨 돌리고 금방 들어가는 거지만……."

그러자 그는 자기 주변 사람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여느 집안이 그렇듯이 엄마가 공부며 생활태도 문제로 중학생 자녀에게 고성을 지르며 야단치자 아이도 마구 대드는 상황이 벌어졌다.

엄마가 홧김에 문을 박차고 나와버렸는데 아이가 13층 아파트에서 그대로 투신했다는 거였다.

"그러니까 차라리 애가 나가서 집안과 다른 바깥 공기도 쏘이고 길거리의 사람도 보고, 하늘이며 나무도 쳐다보게 하는 게 훨씬 나아요."

그의 말은 평소 내가 갖고 있던 '청소년 삶의 공간'에 대한 문제를 다시 생각하게 했다.

우리나라 청소년 자살률 문제가 나올 때마다 안타깝기 그지없다.

정말 심각하고 중요한 문제인데도 이유만 분분할 뿐 어떤 대책도 내놓지 못하고 있다.

물론 과중한 학업스트레스가 가장 중요한 원인일 터이다. 하지만 나는 주거환경에도 상당한 연관성이 있다고 본다.

정확한 통계는 모르겠지만 중·고생의 70~80%가 아마 아파트에서 거주할 확률이 높다.

아파트는 요철이 없는 지극히 평면적 공간이다. 꽉 막힌 구조에서 손쉽게 밖으로 연결된 것은 창문뿐이다.

시골에서 살던 어린 시절, 어른들의 꾸중이나 엄마의 회초리를 피해 방문만 열고 나오면 혼자 화를 삭히기 좋은 공간이 가까이 널려 있었다.

안채와 다소 떨어진 헛간에 숨어들 때면 알을 낳고 있던 닭과 서로 숨죽인 채 멀뚱멀뚱 대면하는 적도 있었다.

그러면 서러운 것도 잠시 잊고 알을 가져갈 욕심에 닭이 자리만 뜨기를 기다리기도 했다.

또 대문도 달려 있지 않은 마당을 나가면 바로 동네 고샅길이었다.

지나가던 마을 할머니가 "아무개야 어디 가니·"하는 다정한 말에 맘이 조금 풀린 상태로 쏘다니다가 동네 똥개에게 살짝 남은 분풀이를 하면 되었다.

그도 아니면 둑방에 앉아 손이 파래지도록 풀을 잡아 뜯거나 냇가에서 돌팔매질로 물수제비를 수십 번 뜨다 보면 마음이 누그러졌다.

스웨덴과 덴마크 핀란드 등 북유럽의 학교를 잠시 볼 기회가 있었다.

가장 인상적이었던 것은 조금 큰 가정집 같은 소규모 학교가 많았다는 점이고, 특별실이나 교실들이 지하 1층부터 3층까지 아기자기하게 꾸며져 있다는 점이었다.

건축 설계가 오밀조밀해서 혼자서도 잠깐 마음을 내려놓을 수 있게끔 공간이 구성되어 있었다. 하지만 우리의 학교는 어떤가.

천 명에 가까운 학생들이 북적이는 공간이 획일적이고 평면적이며 어디서나 휑하게 뚫려있어서 개인의 사적 반경이 고스란히 노출된다.

하루 종일 타인의 시선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끊임없이 남을 의식해야 하고 접촉해야 하는 이런 문제가 학교 폭력을 더 부채질하는 것이 아닌가 싶다.

집이나 학교에서 아이들의 일상에 자연이 끼어들 여지 또한 전혀 없다.

어느 건축가의 말처럼 '서로 품위 있게 외면할 수 있는 권리가 보장되어, 갈등을 잘 삭여낼 수 있는 공간 구조'가 중요하다.

예산과 관계된 일이겠지만 청소년들의 삶을 위해 '공간'에 대한 문제를 어른들이 좀 더 숙고해 보았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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