멈추어야 비로소 삶이 보인다

2013.06.03 16:49:11

윤기윤

前 산소마을 편집장

지난 29일 LA다저스의 류현진 선수가 LA에인절스와의 경기에서 9이닝 2피안타 7탈삼진 무실점 호투로 11경기 만에 데뷔 첫 완봉승을 이뤄냈다. 경기 중에 상대편 타자 마크 트럼보의 강습 타구에 왼발을 강타당한 류현진은 긴급 치료 후 통증을 참고 완봉승을 해낸 것이다. 그러자 스승 김인식 감독이 전화통화로 제자인 류현진 선수에게 조언을 했다.

"메이저리그에서는 자기 의사표현이 분명해야 해. 과거 투수 김병현이 아파도 말하지 않고 뛰다가 도저히 참을 수 없는 지경에 이르러 쉬겠다고 하니, 감독이나 코치들은 이해를 못했지. 그래서 서로 불신하게 되었어. 그러니 현진이도 아프면 참지 말고 분명히 쉬겠다고 말해야 돼. 멈출 때는 멈출 줄 아는 것도 중요해. 그래야 선수생명이 오래가."

살아가면서 멈추어야 할 때 잠시 쉬는 것도 때론 용기이며 지혜다. 지난 5월, 세계 최고봉 에베레스트에서 한 젊은 산악인의 쓸쓸한 죽음이 온 국민의 마음을 아프게 했다. 부산 부경대 산악부 출신인 서성호(33)대원이다. 그는 2006년 봄 중국 티베트 쪽 코스로 에베레스트에 올랐고, 2008년 봄부터 다이내믹 부산희망원정대 대원으로서 선배인 김창호 대장과 함께 히말라야 8000m급 14좌(座) 고봉 완등 레이스를 펼쳐왔다. 2011년 가을까지 그는 12개 고봉을 올랐다. 14좌 가운데 파키스탄 히말라야의 K2(8611m)와 브로드피크(8047m) 2개 고봉만 남겨놓고 있었다. 그 당시 죽음의 현장을 그대로 지켜보았던 월간 '산'의 한필석 기자의 생생한 증언은 삶을 다시 한 번 깊이 생각하게 만든다.

'아침에 성호는 텐트 안에서 그대로 죽었다. 동료가 흔들어도 깨어나지 못했다. 숨이 가팠는지 그대로 앉아서 죽었던 것이다. 성호는 그대로 앉은 채로 산이 되었다.'

죽음의 모습을 아무런 수식 없이 담담히 기록했지만, 마지막 문장이 가슴을 울렸다. 사람이 죽어가는 데 왜 자꾸 위험한 산을 오르느냐고. 뭐라고 답을 해야 할지 난감하지만, 그 답을 생전의 서성호 대원의 말로 대신 전해본다고 했다.

"별은 딸 수가 없지만 산은 올라갈 수가 있잖아. 시험해보고 싶어, 나 스스로를."

인간이 아름다운 것은 실리를 따지지 않고, 꿈을 향해 앞으로 나아간다는 데 있다. 하지만 목숨보다 아름다운 것은 없다. 그리고 그 생명은 나만의 것이 아니다. 동료대원들은 모두들 산소마스크 쓸 것을 서대원에게 그토록 권했지만 그에게는 오로지 '무산소 등정' 이라는 목표만 보였을 뿐이었다. 결국 그는 텐트에서 산소를 희구하는 자세로 앉은 채로 산이 되었다. 카트만두에서 한줌의 재로 남겨진 그의 죽음 앞에 흘린 어머니의 눈물이 더욱 가슴을 친다. 다음 등정을 위해 조금만 더 숨을 골랐다면 얼마나 좋았을까 부질없이 안타까운 상상을 해본다. 얼마 전에 청주 '행복카페'에서 만난 노무현재단 충북지역 준비위원장 진화 스님의 말이 떠오른다.

"세상에는 가치 있고 좋은 것이 너무 많습니다. 그런데 사람들은 꽃이 예쁜 줄도 모르고 달이 밝은 것을 알지 못합니다. 지금쯤 잠시 멈춰 자신의 삶을 돌아보세요. 달리는 차량에서는 주변 풍경을 보지 못합니다. 다만 앞이 보일 뿐이지요. 멈추어야 비로소 주변의 삶이 눈에 들어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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