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면의 추억

2013.09.02 16:50:32

윤기윤

前 산소마을 편집장

지난 일요일 아침 메뉴는 라면이었다. 어쩌면 네 식구가 유일하게 식탁에 둘러앉아 먹는 경우는 일요일 아침이 유일했기에 조금은 의아했다.

"아이들이 라면이 먹고 싶대요."

어느 때부터인가 우리 집 식사메뉴는 아이들의 요구와 기호에 따라 좌우되는 경우가 많았다. 사실 저녁 약속이 잦은 나의 경우 탓이기도 했다. 라면을 젓가락으로 집어 '후루룩' 목에 넘기니 잊고 있었던 라면의 추억이 하나 둘 살아났다.

라면에 대한 나의 첫 만남은 초등학교 1학년 때이다. 서울에서 막 이사 온 이웃집 형의 집에 놀러갔다. 동그란 전기 곤로에 냄비를 올려놓고 곱슬곱슬한 노란색의 뭉치를 끓는 물에 넣었다. 난생 처음 보는 신기한 음식에 넋을 잃고 바라보았다. 냄비뚜껑에 얹어 '후루룩' 먹던 그 최초의 맛은 별천지의 맛이었고, 경이롭기까지 했다. 고소하면서도 달큰하게까지 느껴지는, 그 어떤 맛과도 비교 될 수 없었던 절대미감(絶對味感)이었다.

라면에 대한 두 번째 인상적인 기억은 중학교 3학년 때다. 당시 고입을 앞두고 야간 자습을 하기 전, 늘 담임선생님은 교탁 옆에서 라면을 끓여 드셨다. 낡은 전기 곤로 위, 작고 노르스름한 양은냄비에 라면을 끓였는데, 특이한 것은 스프를 넣지 않고 면만 충분히 익힌 후, 최후의 순간에 스프를 넣었다. 사실 라면을 끓이는 동안 함께 도시락을 먹는 학생들은 내내 그 라면 냄새에 취해 있었다. 고소하면서도 뭐라 형용할 수 없는 그 향기에 친구들은 라면의 로망까지 생겼었다. 어느 날은 맨 앞자리에서 도시락을 먹고 있던 나와 라면을 드시던 담임선생님 눈이 우연히 마주쳤다.

"먹고 싶으냐?"

대답을 하지 않고 빙긋 웃자, 선생님은 내 앞에 친절하게 냄비를 통째로 갖다 주셨다. 친구들의 부러워하는 시선을 등에 업고 선생님이 드시던 라면을 입에 넣는 순간, 뭐라 표현할 수 없는 절묘한 맛이 입안에 감돌았다.

소설가 이문열도 "노랗고 자잘한 기름기로 덮인 국물에 곱슬곱슬한 면발이 담겨 있는데, 그 가운데 깨어 넣은 생 계란이 또 예사 아닌 영양과 품위를 보증하였다. 그는 갑작스레 살아나는 식욕으로, 그러나 아주 공손하게 라면을 먹기 시작했다. 그때의 주관적인 느낌으로는 세상에서 가장 귀하고 맛난 음식을 먹고 있는 듯했다."라고 소설 '변경'에서 묘사했다.

라면이 처음 나온 것은 60년대 초였다. 당시 춘궁기에는 2맥만 명 이상이 굶주렸던 시절이었다. 이 배고픈 시절에 나타난 라면은 무엇보다 값이 저렴하면서도 국민들의 주린 배를 채워 주었다. 더구나 맛도 경이로울 만큼 빛났으니 국민의 식량으로 부족함이 없었다.

아침 식탁에서 가족이지만, 나이와 성별, 계층에 상관없이 동일한 한 끼의 식사를 제공한다는 점에서 그것은 한국인의 평등의식마저도 일깨워 준다는 생각을 한다.

'내가 아는 어떤 사람은 작년 10월, 프랑스의 한 해변에서 코펠과 버너를 꺼내어 황혼 무렵의 고성을 바라보며 라면을 안주로 소주를 마셨는데, 아아 그 맛이 죽이더라나'

다큐멘터리 작가 홍하상의 '프랑스 뒷골목 엿보기'에 등장하는 일화다. 라면은 서민적이지만, 때로는 작가들의 고급스런 취향의 정점에 놓이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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