낙타들의 목욕

2013.03.04 13:26:01

윤기윤

前 산소마을 편집장

화석에 남겨진 자료에 따르면 낙타는 200만 년 전까지 수 천 년 동안 오늘날 미국과 캐나다의 광활한 초원에서만 번성했다고 한다. 그러던 낙타가 왜 북아메리카 대륙을 떠나 하필이면 살기 힘들고 척박한 사막에서 살고 있을까. 현재는 북아메리카 대륙에 낙타는 더 이상 살지 않는다.

생태학자 최형선씨는 그 이유를 쉽고 재미있게 분석했다.

"낙타는 기후 적응력과 양분 저장능력이 다른 동물에 비해 아주 빼어나다. 그러므로 굳이 먹이사슬의 경쟁자들이 우글거리는 곳에 머물 필요가 없었을 것이다. 다른 동물들과 먹이다툼을 벌이지 않아도 되고, 영역 다툼도 없으며, 힘센 놈이 나타나면 달아나지 않아도 되었다."

얼마 전, 강원도 산골을 다녀 온 적이 있었다. 강원도 산골에서 고랭지 배추를 재배하는 한 지인과 약속을 지킬 요량이었다. 저녁 무렵 바다가 훤히 보이는 원두막에서 푸짐한 삼겹살로 배를 채우고 피로를 푼다고 일행은 모두 덜컹거리는 트럭을 타고 목욕탕이 있는 읍내로 향했다.

허름한 목욕탕이었다. 목욕을 마친 여자 한 분이 말한다.

"뿌연 수증기 사이로 드문드문 사람의 형체가 보일 듯 말듯 했어요. 한쪽 구석에서 이상한 풍경을 보았습니다. 하나같이 등이 굽은 여인들이 떼로 몰려와 목욕을 하는 겁니다. 앙상한 몸매에 머리를 닭처럼 아래로 향한 채 연신 물을 뿌리는 모습…그러다 보니 자연스럽게 굽은 등이 마치 낙타의 등에 솟은 봉처럼 보였어요."

"여기 아낙네들은 다 그래요. 몇 십 년을 허리를 굽혀 배추농사를 짓다 보니 다 낙타의 등처럼 저리 되었어요. 아무리 힘들어도 이곳을 떠나지 못해요. 다른 곳에서는 살 수가 없나봅니다. 평생 배운 것이 배추농사거든요. 우리들도 그렇게 불러요. 낙타들의 목욕이라고."

한낮의 무더위, 물과 음식 부족만 견뎌내면 되는 사막이 낙타에게는 어쩌면 담담한 삶을 누리게 하는 최적의 공간이었을 것이다. 낙타가 먹을 것 풍성한 초원을 버리고 결국 사막으로 간 이유가 그런 것이었을까. 배추농사를 짓는 여인들은 도심을 동경하지 않는다. 사막의 낙타처럼 자연의 환경을 그냥 견디어내면 되는 이곳을 평생 떠나지 않는다고 한다.

서울시립미술관에 가면 송필 작가의 작품 '실크로드 2012'가 있다. 이 작품은 감당하기 힘든 커다란 돌덩이를 인 채로 묵묵히 나아가는 낙타의 여정을 담고 있다. 커다란 짐을 이고 사막을 종단하는 낙타처럼 오늘날 우리들도 무거운 돌덩이를 짊어지고 삶을 어렵사리 영위하고 있다고 말하고 있는 것이다.

무거운 삶을 등에 이고 가다 결국 낙타의 등처럼 굽어 '낙타들의 목욕'이라고 말한다니 가슴이 먹먹해 온다.

이청은 장편소설 '별을 담은 낙타의 눈처럼'에 "언제 끝날지 모르는 사막, 그 사막을 외로이 걸어가는 낙타에게 힘이 되는 것은 언제나 밤하늘을 빛내고 있는 별이 아닐까 싶어."라고 한 주인공의 대사가 인상적이다.

등이 굽은 그분들의 눈망울은 적어도 별을 담은 낙타의 눈처럼 순정하게 빛나고 있으리라 상상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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