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의 품격

2013.05.20 15:46:37

윤기윤

前 산소마을 편집장

"아빠, 나는 어디서 학교폭력이 크게 일어난 줄 알았어요."

중3짜리 작은 아들 녀석의 말에 실소를 금치 못했다. 포털 검색어 1위에 '윤창중 사건'이라고 뜨자 윤창중학교라는 학교에서 폭력 사건이 일어난 걸로 생각했다는 것이다. 자신의 관심사와 눈높이에 따른 해석으로 일견 그럴 만도 했다.

이번 '윤창중 사태'와 관련한 기사에 '수컷의 본성' '남자는 다 똑같다' 운운하는 내용들을 보며 같은 남자로서 억울한 마음이 일었다. 이번 사건을 보며 남자 여자의 문제를 떠나 인격의 문제라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나이든 남자라고 해서 다 '로맨스 그레이'를 꿈꾸는 것도 아니고, 특히나 윤씨 사건은 로맨스도 아닌 그냥 추태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현장에서 사건을 직접 접한 것은 아니지만 전해지는 뉴스를 종합해 보면 윤씨는 이번 방미를 국정 수행이 아니라 무슨 대학 MT 간 것쯤으로 인식한 것 같다. 인턴 여성을 동석한 채 끊임없이 술추렴한 것은 이미 성추행의 전조를 예고하고 있었던 셈이다. 더구나 아침 일찍 찾아온 인턴 여성을 보고 "여길 왜 왔어· 빨리 가"라고 했다는 것도 상식적으로 납득되지 않는 말이다. 그 말이 실제이건, 자신이 꾸며낸 말이건 간에 그것은 역으로 자신의 온당치 못한 생각, 즉 선정적 마음을 투사해내는 내용이기 때문이다.

자신을 수행하는 직원이 아침 일찍 서류를 들고 찾아왔다면 "무슨 일이냐·"고 묻는 것이 상식이고 말의 순서일 것이다. 기자회견 시 이런저런 정황을 술회하는 모습을 보면서 "도둑이 제 발 저리다"라는 속담이 자연스레 떠오르지 않을 수 없었다.

윤씨 사건 직후 일본의 하시모토 오사카 시장이 "위안부는 필요한 제도였다"는 망국적 발언에 뒤이어 오키나와 주둔 미 사령관에게 "보다 많은 풍속업(매춘영업)을 활용해 달라"는 저질 망언을 서슴없이 쏟아냈다.

윤창중 사건과 하시모토 망언은 상황도 사안도 전혀 다른 문제지만 공통점이 하나 있다. 그 말과 행위의 주체가 매우 '비인격적' 사고의 사람들이라는 것이다. 여성을 남성의 소유로 생각하거나 성적 해소의 대상으로 격하시켜 취급하는 저열한 의식을 가지고 있다는 점이다. 그러한 사고와 태도를 여성들이 남성들의 일반화된 의식으로 확대시켜 생각할까 겁난다.

물론 남성도 여성도 모두 성적 욕망을 가지고 있다. 그것은 사람마다 정도의 차이는 있을지언정 식욕이나 수면욕과 별반 다르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보통의 상식적인 사람들은 예의와 절제로써 자신의 품위를 지켜낸다.

대학에서 평판이 좋았던 한 교수님이 퇴임 즈음의 술자리에서 "사실 제자인 여대생들을 대할 때 마음의 혼란을 겪은 적도 있었어."라고 말했다. 선비처럼 처신이 깨끗했고 성품이 훌륭한 분이었기에 그처럼 솔직한 고백이 조금 놀랍기도 했다. 그러면서 새삼 그분의 인품이 돋보였다. 요즘 흔히 논란이 되고 있는 '갑과 을의 위치상' 그분이 논문 지도나 이러저러한 핑계로 '을'의 위치에 있는 여학생에게 마음 내키는 대로 행동했다면 어떤 결과를 가져왔을까. 그동안 세상을 떠들썩하게 했던 대학 내의 성희롱 문제도 자신을 절제하지 못했던 모자란 인격으로부터 비롯되었던 것이다.

윤창중 사건과 같은 문제는 '남자'이기 때문에 일어난 것이 아니라 품격을 상실한 한 '인간'의 문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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