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색별빛축제

2013.01.21 16:47:26

윤기윤

前 산소마을 편집장

코가 맵고 아리도록 추웠다. 추위에 어깨를 웅크리면서도 사람들은 설레는 마음으로 길게 줄을 섰다. 어둠 속에 환하게 밝힌 수 만개의 전등으로 한겨울 숲은 눈이 부셨다. 멀리 하늘의 별들은 빛을 잃고 저만치 물러나 있었다.

지난 주, 오색별빛축제가 열리고 있는 아침고요수목원 풍경이다. 사전 정보가 충분하지 못했던 탓이겠지만, 난 '별빛축제'라는 말에 마음이 이끌렸다. 멋진 수목원에서 맞이하는 별들은 얼마나 청정하고 또렷할 것인가. 도심에서 미처 눈 마주치지 못한 별들을 만나기 위해 기쁜 마음으로 3시간여 소요거리를 무작정 나섰다.

경기도 가평군 축령산 자락에 위치한 아침고요수목원은 삼육대 한상경 교수가 1996년 미완성의 상태로 개원했다. 설립취지는 '한국자연의 아름다움을 보전하고 인간의 휴식과 심신의 치료에 기여한다'는 것이었다.

방학이라 그런지 가족 단위 관람객이 많았다.

"아빠, 나무가 불쌍해. 불로 칭칭 감겨 있잖아."

딸아이의 질문에 아빠는 순간 말문이 막혔는지 쉽게 대답을 하지 못하다가 "그래도, 너무 아름답지 않아·"라고 말했다. 사실 아빠도 아이에게 한밤중 놀라운 빛의 축제를 보여주기 위해 먼 길을 달려 왔을 것이다. 하지만 오색의 현란한 빛의 축제는 인공의 축제였다. 자연의 한 가운데서 자연을 저 멀리 밀어내고 인간들만이 눈의 호사를 즐기는 이기적 축제였다. 사람들은 어둠 속에 묵묵히 바라보는 나무들은 외면한 채, 화려한 네온전등의 불빛만 에워쌌다. 마치 불나방처럼 끝없이 몰려들어 카메라 셔터를 눌러댔다.

난, 진한 먹빛의 겨울 숲 가운데서 눈이 시리게 빛나는 하늘의 별을 만나고 싶었다. 도심의 불빛이 전혀 없는 대 자연의 숲에서 '챙챙' 거리며 쏟아져 내리는 별빛의 무리를 보고 싶었다.

몇 년 전, 온 가족이 남이섬 여행을 한 적이 있었다. 1박2일의 여정으로 남이섬 호텔에서 하루를 묵었다. 저녁 9시 이후 남이섬은 적막했다. 상가의 불빛도 모두 꺼지고 가로등도 없었다. 오직 조명이라고는 하늘의 별과 달뿐이었다. 우리 가족은 그 신비로운 빛이 열어준 숲길을 함께 걸었었다. 달빛이 길을 열고, 별빛이 말을 걸어왔다. 아이들은 숲 어디론가 뛰어 갔고, 우리 부부는 천천히 그들을 따라갔다. 등불 없는 가로등처럼 키 큰 메타세퀘이아가 양쪽으로 도열한 가운데 달빛이 쏟아져 내리는 길은 마치 동굴처럼 신비한 모양새로 아득히 뻗어 있었다. "다른 차원의 세계에 들어온 것 같아." 당시 초등학교 아들아이는 이렇게 말했다.

겨울 숲의 신비로움은 인간의 손길이 배제된 자연 그대로일 때 가장 아름답다. '아침고요수목원'에서 기획한 '오색별빛정원'전은 많은 인파를 끌어들였지만, 정작 수목원을 방문하고 돌아오는 길에 가슴은 텅 비었다. 그저 눈의 피로감만이 한꺼번에 밀려들었다.

아무런 이벤트도 화려한 재미거리도 없었던, 남이섬에서의 1박이었지만 아이들은 돌아오는 길에 말했다.

"아빠, 우리 여기 언제 다시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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