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이좋게 지내기

2013.07.08 16:04:23

윤기윤

前 산소마을 편집장

"옆집 아이로 생각하면 서로 사이좋게 지낼 수 있다." 요즘 부모들 사이에 사춘기 자녀 양육에 관한 농담조의 말이다. 자식의 일거수일투족에 신경 쓰이지 않는 부모가 어디 있으랴. 그런데 하나에서 열까지 거슬리지 않는 것이 없다. 내 자식은 특히나 장점보다 단점이 눈에 더 들어오기 마련이다. 무엇보다 칭찬이 우선이라 했건만 내 닮은꼴의 모습에서 고쳐야 할 점이 우선 눈에 띄는 것은 인지상정 아닐까. 작은 것이라도 우선 칭찬부터 해주고 보자는 결심이 무색하게 저절로 '이래라 저래라'하는, 소위 잔소리부터 하게 마련이다. 그러니 아들 녀석들도 아빠의 이른 귀가가 썩 반갑지 않을 터.

현관에 들어서면 분명 거실 컴퓨터 앞에 앉아 있었을 작은 녀석의 '휘리릭' 일어나는 기운이 센서처럼 자동 감지된다. 급히 일어나느라 모니터만 꺼져 있고 본체는 그대로 켜져 있다. 모니터를 켜봤자 게임이 돌아가고 있을 터. 확인하고픈 충동을 지그시 누른다. 다소 늦은 시간 귀가하면, 두 녀석이 희희낙락 보고 있던 TV를 급히 끄고 각기 제 방으로 들어간다. 본의 아니게 훼방꾼이나 침입자가 된 기분이 편치 않다.

한 세대 차이만큼이나 사고방식과 가치관의 차이가 클 수밖에 없다. "너는 사내자식이 양말 색깔이 그게 뭐냐?" 큰아이의 분홍색 양말이 눈에 거슬려 한 마디 했더니 "남자는 파란색, 여자는 분홍색, 그게 법으로 정해져 있나요?" 말인즉슨 그런 편견에 도전하기 위해서라도 일부러 신는 것이란다. 그렇게 생각한다면 생각으로 그칠 것이지 부러 행동으로 옮길 필요는 없잖은가 말이다. 그렇게 서로 이런저런 생각의 차이로 언쟁이 되었다.

마음을 가라앉히려 책장을 정리하다 아이들 어린 시절의 앨범이 눈에 띄었다. 봉인된 시간이 풀려 버린 것처럼 새삼 과거의 순간들에 빠져들었다. 젊은 아빠는 어린 아들과 공원에서, 놀이동산에서, 미술관에서, 포도과수원에서 행복하고 흐뭇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사진이라고 하는 것은 화가 나 있거나 분란이 있을 때 촬영되는 것이 아니므로 미소의 순간만 각인되어 있다 보니, 그때의 유화적 분위기에 젖어들어 마음이 한결 누그러졌다. 그중 눈에 유독 들어오는 사진이 있었다. 큰아이가 서너 살 무렵에 식탁에서 찍은 사진이었다. 어렴풋이 기억을 떠올려 보니 소위 말하는 인증샷이었다. '나중에 보여 줄 거야'하며 아내는 셔터를 눌렀었다.

그 무렵의 큰아이는 내가 살짝 씹어주는 김치찌개의 돼지고기를 유난히 좋아하고 잘 먹었다.

"너, 나중에 아빠가 먹던 거 줬다고 더럽다고 안 할 거지?" "응, 안 할 거야. 맛있어." 그때의 대화가 어제인 듯 선명했다.

아이를 불러 어린 날의 사진을 머리를 맞대고 같이 들여다보며 씹어 먹여주던 돼지고기 이야기를 해주니 기억이 날 듯 말 듯 하단다. 제 어린 날을 이윽히 들여다보는 옆모습을 보니 이제 정말 한 사람의 성인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소화되기 쉽게 내 입안의 것을 먹여주던 어린애가 더 이상 아닌 것이다. 너무 조바심내지 말고 세상의 모든 것을 이제 제가 직접 받아들이고 소화시키는 것을 지켜보아야 할 때인 것이다. 그랬다. 며칠 전 큰아이와 같이 동사무소에서 주민등록증을 신청하지 않았던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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