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봄날의 하루

2013.04.08 15:01:50

윤기윤

前 산소마을 편집장

"아빠! 이제 나 망했어요. 코코가 없어졌다고!"

이른 아침 출근길, 학교에 가 있어야 할 아이가 엉엉 울며 전화를 걸어왔다. 아이가 애지중지하는 고양이 코코가 감쪽같이 없어졌다는 말이었다. 온 집안을 다 뒤져보고 숨을 만한 곳을 모두 찾아보았는데 어디에서도 전혀 기척이 없다는 거였다. 아이는 아마 식구들이 아침에 출근하거나 학교에 가느라 문을 연 사이 나가지 않았나 하늘이 무너진 듯 걱정하고 있었다. 그도 그럴 것이 코코는 새끼를 배고 있었다.

"너는 얼른 학교 가봐. 지각하겠다. 아빠가 찾아볼게."

걱정이 되어 차를 돌려 다시 집으로 들어왔다.

작년 5월, 아이들 성화에 못 이겨 페르시안 고양이-털이 길고 무성한 고양이- 두 마리를 집안에 키우게 되었다. 작은아이가 바로 북한군도 무서워 남침을 못한다는 중2병을 앓고 있었기에 정서적 안정감을 주기 위한 고육책이었다. 애완동물을 과히 좋아하지 않는 우리 어른들로서는 갑자기 식구가 되어버린 이 '털북숭이'들이 정말 괴로운 존재들이었다. 무엇보다 눈처럼 날리는 털은 감당하기 힘들었다. 거실 여기저기 털들은 실 뭉치가 되어 굴러 다녔다. 한번은 녀석들의 목 언저리에 혹 같은 것이 생긴 것 같아 가만히 들여다보았더니 빠진 털이 단단히 뭉쳐져 제 몸에 혹처럼 매달고 다니는 것이었다.

지난 2월 아이들과 합의하에 수컷 고양이 샤넬-디자이너 코코 샤넬에게는 미안하다-은 아는 지인에게로 보냈다. 아내가 두 마리는 도저히 못 키우겠다고 아이들에게 간절히 호소한 결과였다. 그동안 정이 들어 서운하긴 했지만 어쩔 수 없었다. 샤넬이 떠난 후, 코코의 몸이 이상했다. 병원에 갔더니 새끼를 가진 것이 확실하다는 진단을 받았다. 난생 처음 동물이 새끼 낳는 것을 감당해야 하는 우리 식구들은 어떻게 해야 할지 걱정이었다. 수의사는 어미 혼자 알아서 잘 처리할 터이니 염려 말라했다. 다만 집을 더 따뜻하고 아늑하게 꾸며 주라는 것이었다. 당장 원래의 고양이 집 안에 상자와 담요로 포근한 자리를 만들어 주었다.

그것이 바로 어제 오후의 일인데 오늘 아침 코코가 사라지고 만 것이었다. 아직 날도 찬데 어디 가서 어떻게 새끼를 낳을까. 마음이 미어졌다. 그동안 솔직히 키우는 일이 힘들어서 어딘가로 사라져버리면 어떨까 은근히 바라는 마음도 있었다. 그런데 막상 없어지고 보니 마음이 너무 아팠다. 온 집안을 샅샅이 훑어도 찾을 수 없어 망연자실하고 있었는데 바로 등 뒤에서 사각사각하는 소리가 들려왔다. 일순 마음에 따스한 물결이 밀려오며 안도의 한숨이 절로 나왔다. 코코는 아내의 살짝 열려진 옷장 안 옷더미 속에 들어가 있었다. 옷장 깊숙이 들어가 있었으니 도무지 찾을 수 없었던 것이다. 오후에 퇴근하여 보니, 놀라운 일이 벌어졌다. 작은 생명체들이 코코 옆에 꿈틀거리고 있었다. 아마도 곧 태어날 새끼들을 위해 코코는 아침부터 더 아늑한 보금자리가 필요했던 것이다. 코코를 잃어버려 허전했던 마음에 갑자기 귀여운 새끼 3마리가 생기니 괜히 마음이 더 뿌듯해 온다.

몽실몽실한 새끼 3마리를 가슴에 품고 젖은 먹이고 있는 어미 코코가 봄빛에 꾸벅꾸벅 졸고 있다. 롤러코스터 같은 어느 봄날의 하루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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