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양이 분양

2013.06.10 13:18:28

윤기윤

前 산소마을 편집장

"엄마야아~!" 제수씨가 비명을 지르며 얼른 소파 위로 뛰어 올라가 다리를 모으고 몸을 움츠렸다. 아내와 나는, 처음 보는 어린애 같은 제수씨의 모습이 그저 재미있기만 했다. 사십대 중반이 다 된 어른이 아기고양이가 무서워 벌벌 떠는 모습이라니……. "저는 고양이가 너무 무서워요." 멋쩍은 웃음을 지으며 제수씨는 소파에서 다리도 내리지 못한 채 변명처럼 말했다. 아들의 성화에 못 이겨 새끼고양이를 가지러 오긴 했지만 얼굴에는 마땅찮은 기색이 역력했다. 반면 같이 온 중 3짜리 조카는 좋아서 싱글벙글 마냥 좋기만 하다. 외동아이인 조카를 위해서 동생 부부는 용단을 내린 것이었다. 하긴 동생도 동물을 무척 좋아하니 문제는 집안의 유일한 여자인 제수씨뿐이었다. 하지만 저렇게 무서워해서야 어디 고양이를 키울 수 있겠는가. 나는 내심 우리 아기고양이의 안위가 걱정이었다.

그런데 제수씨는 데려가기는 하되 일주일 정도만 데리고 놀고 제수씨의 동생네에 주는 것으로 조카에게 다짐을 받아 놓은 터였다. 엄마는 도저히 키울 수 없으니 그렇게라도 고양이와의 동거를 잠시 허한 것이었다. 제수씨의 동생은 같은 자매인데도 고양이를 무척이나 좋아한다고 했다. 그래서 고양이 데려오기만을 학수고대하고 있다는 것이었다.

나로서는 아무래도 조카의 이모네로 곧바로 가길 바랐다. 처음 핏덩이로 태어나 어미젖을 빨며 자라난 과정을 지켜본 정리(情理)로서는 이리저리 떠도는 것보다 처음부터 사랑받는 가정에 안착되길 바라는 마음이 컸다. 사실 우리 아이들은 새끼 둘을 계속 키우자고 하였지만, 어미까지 고양이 세 마리를 키운다는 것은 너무도 힘에 부치는 일이었다. 고양이를 데려간 지 일주일 정도 되었을 때 동생에게서 전화가 왔다.

"형, 정말 고마워. 참, 별일이야. 집사람이 고양이를 너무 예뻐해. 우리 둥이 때문에 집에 웃음이 떠나질 않아." 이름을 둥이라고 지었나 보았다. 귀염둥이의 둥이를 의미한다고……. 아내한테도 제수씨로부터 전화가 왔다. "성준이 아빠가 우리 애기 때문에 요즘 술도 안마시고 일찍 들어와요. 아유 형님 덕분에…. 애기가 애교도 많고 너무 예쁘고 귀여워요. 성준이 아빠는 애기처럼 항상 안고 다녀요. 성준이 아빠가 발톱도 다 깎아 주고 ,똥도 매일 치워 주고 저는 그냥 예뻐만 하면 돼요." "동물도 그런데, 나중에 손자를 보면 얼마나 예쁘겠어. 그나저나 동생네 안 주기로 한 거야·" "그래서 동생이 삐졌어요. 한껏 기다리고 있었는데, 좀 미안하게 됐지만 할 수 없지요. 뭘." 그래서 할 수 없이 우리 집에 남아 있던 나머지 또 한 마리를 제수씨의 동생네 집으로 보내기로 했다. 우리 집 어미고양이 코코에게는 자식들과 헤어지는 생이별이어서 마음 아팠지만, 사랑을 듬뿍 받는 집으로 갔으니 조금은 덜 미안했다.

아기고양이 둘을 분야하고 나니, 자식을 출가시키기라도 한 듯 마음이 짠하면서도 한편 홀가분하기도 하다. 훗날 자식들을 출가시키고 나면 어떤 기분일까 잠시 두 마리 아기고양이를 떠올리며 한껏 상상해보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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