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에 젖은 달님

2013.10.21 15:02:41

윤기윤

前 산소마을 편집장

"아빠, 비가 오면 달님이 젖지 않아?"

비가 후드득 쏟아지는 날, 창문을 닫고 있는 내게 아이가 말했습니다. 아마도 초등학교 들어가기 전이었을 겁니다. 어른들은 비가 온다고 달님이 젖을까봐 염려하는 시선은 절대로 가질 수 없습니다. 아이니까 가능한 일입니다. 하지만 아이도 자라면서 아이만의 시선은 점점 사라지고 맙니다. 그러고 보니 또 생각나는 일이 있습니다. 어릴 적 아이와 캄캄한 밤의 시골길을 걸은 적이 있습니다. 아이는 걷다말고 자꾸만 힐끔힐끔 뒤를 돌아보는 겁니다.

"아빠, 달님이 자꾸만 우리를 따라와."

아이의 말을 듣는 순간, 난 잊었던 기억이 떠올랐습니다. 제가 어렸을 적에도 달님은 우리를 따라오는 것만 같았거든요. 천천히 걸으면 천천히, 빨리 달리면 달님도 보조를 맞춰 우리를 따라오는 것만 같았어요. 심지어는 기차를 타도 달님은 우리를 따라오는 것 같았지요. 그런 기억들을 까맣게 잊고 살았던 거죠. 그래서 아이에게 말해주었습니다.

"지금 너를 따라다니는 저 달님은 예전에 아빠를 따라다니던 달님인가 봐. 아빠가 어른이 되니 달님이 어디론가 달아났더니, 이제 다시 나타나 너를 따라오는구나!"

"달님은 어른들에게는 안 따라 다녀?"

"달님은 아이들에게만 따라다니나 보지."

아이는 고개를 갸우뚱거립니다.

아동문학자가인 고(故) 이덕호 선생이 엮은 아이들의 시집 '나도 쓸모 있을 걸'이란 책에 보면 아이들의 천진무구한 시들을 만나볼 수 있지요.

'엄마, 엄마./ 내가 파리를 잡을라 항깨 / 파리가 자꾸 빌고 있어.'

-경화봉화 삼동초 1년 이현우 '파리'

파리가 가만히 앉아 앞발을 비비고 있는 모습은 흔한 풍경입니다. 그런데 어른들은 그것을 어떤 예비동작으로 보고 있지요. 초등학교 1학년인 이현우 어린이는 그것을 '빌고 있다'고 표현합니다.

또 있습니다.

'돌담은 뱀의 엄마도 된다/ 돌담은 다람쥐의 엄마도 된다/ 돌담은 쥐의 엄마도 된다/ 사람이 잡으려고 하면/ 돌담인 엄마 품으로 쏙 들어가 버린다.' -안동 대성초 6년 김명숙 <돌담>

돌담을 엄마라고 표현하는 아이의 마음이 따뜻합니다. 뱀도, 다람쥐도, 쥐도 한 형제처럼 돌담의 품에서 사는 모습을 아이들은 본 겁니다. 사실 이덕호 선생의 '나도 쓸모 있을 걸'이란 시집을 만나게 된 것은 '책은 도끼다'를 쓴 박웅현 카피라이터의 추천 덕분이기도 합니다.

달님이 비에 젖을까봐 염려하던 그 아이는 어느덧 중학생이 되고, 다시 자라 고등학생이 되려고 합니다. 창의적인 아이가 아니라, 일정한 박스에 담겨진 규격품처럼 교육의 틀에 길들여져 가는 것만 같아 안타깝습니다.

피카소는 말했습니다.

"나는 14세에 라파엘로 같이 그릴 수 있었지만, 아이들 같이 그리는 법을 배우는 데는 평생이 걸렸다."

아이들과 같은 순수한 시선은 한번 잃어버리면 다시 돌아오기 힘든가봅니다. 그 옛날 우리를 따라오던 달님을 잃어버렸던 것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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