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빠, 비가 오면 달님이 젖지 않아?"
비가 후드득 쏟아지는 날, 창문을 닫고 있는 내게 아이가 말했습니다. 아마도 초등학교 들어가기 전이었을 겁니다. 어른들은 비가 온다고 달님이 젖을까봐 염려하는 시선은 절대로 가질 수 없습니다. 아이니까 가능한 일입니다. 하지만 아이도 자라면서 아이만의 시선은 점점 사라지고 맙니다. 그러고 보니 또 생각나는 일이 있습니다. 어릴 적 아이와 캄캄한 밤의 시골길을 걸은 적이 있습니다. 아이는 걷다말고 자꾸만 힐끔힐끔 뒤를 돌아보는 겁니다.
"아빠, 달님이 자꾸만 우리를 따라와."
아이의 말을 듣는 순간, 난 잊었던 기억이 떠올랐습니다. 제가 어렸을 적에도 달님은 우리를 따라오는 것만 같았거든요. 천천히 걸으면 천천히, 빨리 달리면 달님도 보조를 맞춰 우리를 따라오는 것만 같았어요. 심지어는 기차를 타도 달님은 우리를 따라오는 것 같았지요. 그런 기억들을 까맣게 잊고 살았던 거죠. 그래서 아이에게 말해주었습니다.
"지금 너를 따라다니는 저 달님은 예전에 아빠를 따라다니던 달님인가 봐. 아빠가 어른이 되니 달님이 어디론가 달아났더니, 이제 다시 나타나 너를 따라오는구나!"
"달님은 어른들에게는 안 따라 다녀?"
"달님은 아이들에게만 따라다니나 보지."
아이는 고개를 갸우뚱거립니다.
아동문학자가인 고(故) 이덕호 선생이 엮은 아이들의 시집 '나도 쓸모 있을 걸'이란 책에 보면 아이들의 천진무구한 시들을 만나볼 수 있지요.
'엄마, 엄마./ 내가 파리를 잡을라 항깨 / 파리가 자꾸 빌고 있어.'
-경화봉화 삼동초 1년 이현우 '파리'
파리가 가만히 앉아 앞발을 비비고 있는 모습은 흔한 풍경입니다. 그런데 어른들은 그것을 어떤 예비동작으로 보고 있지요. 초등학교 1학년인 이현우 어린이는 그것을 '빌고 있다'고 표현합니다.
또 있습니다.
'돌담은 뱀의 엄마도 된다/ 돌담은 다람쥐의 엄마도 된다/ 돌담은 쥐의 엄마도 된다/ 사람이 잡으려고 하면/ 돌담인 엄마 품으로 쏙 들어가 버린다.' -안동 대성초 6년 김명숙 <돌담>
돌담을 엄마라고 표현하는 아이의 마음이 따뜻합니다. 뱀도, 다람쥐도, 쥐도 한 형제처럼 돌담의 품에서 사는 모습을 아이들은 본 겁니다. 사실 이덕호 선생의 '나도 쓸모 있을 걸'이란 시집을 만나게 된 것은 '책은 도끼다'를 쓴 박웅현 카피라이터의 추천 덕분이기도 합니다.
달님이 비에 젖을까봐 염려하던 그 아이는 어느덧 중학생이 되고, 다시 자라 고등학생이 되려고 합니다. 창의적인 아이가 아니라, 일정한 박스에 담겨진 규격품처럼 교육의 틀에 길들여져 가는 것만 같아 안타깝습니다.
피카소는 말했습니다.
"나는 14세에 라파엘로 같이 그릴 수 있었지만, 아이들 같이 그리는 법을 배우는 데는 평생이 걸렸다."
아이들과 같은 순수한 시선은 한번 잃어버리면 다시 돌아오기 힘든가봅니다. 그 옛날 우리를 따라오던 달님을 잃어버렸던 것처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