즐거운 학교

2013.02.25 16:03:36

윤기윤

前 산소마을 편집장

이번 겨울에 아이들을 데리고 베트남과 캄보디아로 여행을 다녀왔다. 혹자는 우리보다 못 사는 나라에 뭐 그리 배울 것이 있겠느냐고 했지만, 세상 모든 곳에서 듣고 보는 것이 안목을 높이고 사고력을 심화시킨다고 생각한다.

여행에서 돌아와 무엇이 가장 인상 깊더냐고 작은 아이한테 물었더니 '학교'라고 한다. 실제로 어떤 학교를 방문했던 것은 아니고, 스치듯이 보았던 작고 허름한 학교 건물이 아이의 기억에 세계적 유적지인 앙코르왓보다도 깊은 인상을 심어준 모양이다. 어쩌면 아이는 물 위에 떠있는 판자집 같은 건물이 학교라는 게 신기하게 느껴졌을 법도 하다.

캄보디아의 톤래샵 호수에 갔을 때였다. 베트남 보트 피플들이 정착한 수상촌에는 수상 가옥들 틈에 학교 건물도 끼어 있었다. 정확히 말하면 '학교 배'라고나 할까. 관광객들의 이목을 끌기 위해 뱀을 목에 휘감고 쪽배를 노저어 와서 구걸하는 아이들이 다니는 학교라고 한다. 가이드가 학교라고 하지 않았으면 그저 그런 가옥으로 생각했을 그런 평범한 집이었다. 무언가를 배우기 위해 아침마다 일렁이는 물결을 헤치고 학교를 향해 노를 저어 가는 예닐곱 살 아이들을 생각하니 콧날이 시큰해졌다.

호수에서 씨엠립으로 가는 길에서도 작은 학교를 볼 수 있었다. 지붕만 얹은 학교였는데 우리나라 60년대식 책상과 걸상이 땅바닥에 놓여 있고, 바나나나무가 교실에 그늘을 드리워주고 있었다.

베트남 하롱베이의 수상촌에서 본 학교는 톤래샵 호수의 학교보다 더 작아서 마치 장난감집 같았다. 역시 물 위에 떠 있는 학교였다. 집의 크기가 우리나라 교실 반 만한 크기밖에는 안 되어 보였는데, 주변의 다른 칙칙한 집들과는 달리 밝은 옥색으로 벽을 화사하게 칠해 놓았다. 그 작은 학교의 지붕 위에 고양이 한 마리가 앉아 졸고 있었다.

비록 그 학교들에서 공부하는 아이들의 모습을 직접 볼 수는 없었지만 나는 '배운다는 것'의 숭고함에 대해서 어쩐지 울컥하는 심정이 되었다. 구걸을 하거나 물고기를 잡아 끼니를 때워도 아이들은 배우려 하고 부모들은 가르치려 한다. 수상촌의 아이들이 교수나 변호사가 되기 위해, 소위 성공하는 삶을 염두에 두고 학교에서 배우는 것일까. 짐작건대 그것은 아닐 것이다. 사람이라면 이 세상에 대해서 알아야 하고, 공부라는 방법을 통해서 그것을 체계적으로 습득할 수 있는 것이다. 우리가 학교에서 배우는 국어, 자연, 수학, 사회 등은 결국 이 세계가 어떻게 짜여져 있고 움직이는가에 대한 기초적인 지식이다.

공부한다는 것은 겸손한 태도로 이 세상을 알고자 함이다. 그런데 우리는 아이들에게 학교 공부는 성취의 수단, 직업을 갖거나 꿈을 이루기 위한 하나의 방법으로만 인식시키고 있다. 따라서 아이들은 공부 그 자체의 즐거움을 모르고 공부하는 것을 극복해야 할 고난의 과정으로만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 그래서 그런지 학교 가는 것을 좋아하거나 즐거워하는 아이를 보지 못했다. 언제부터인가 '학교'라는 단어에는 고유명사처럼 이제 '폭력'이 따라붙는 것이 익숙해져 버릴 정도로 학교는 평화로운 곳이 아니라 전쟁터처럼 살벌한 곳이 되어 버렸다.

아이들을 각박하게 경쟁시키지 않고 평화롭고 즐겁게 공부할 수 있는 방법은 없는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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