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10.28 15:34:33

윤기윤

前 산소마을 편집장

지난 주말 속리산 언저리에 새로이 거처를 마련한 지인의 집엘 다녀왔다. 올봄에 시작해 가을이 시작될 무렵 드디어 완공된 것이다. 가을나들이 겸 가는 길에 새 집을 볼 생각에 내 집이 아니어도 조금은 마음이 설렜다. 2년 전 지인이 속리산 근처의 그 땅을 구입했을 때, 빈 땅의 바로 뒷산에 잘생긴 소나무 숲이 우거져서 사뭇 감탄을 한 적이 있었다. 과연 솔향 어린 그곳에 어떤 집이 어떤 모습으로 앉아 있을까 자못 궁금증이 컸다.

보은으로 가는 큰길이 아니라 일부러 산성을 지나 낭성 쪽으로 방향을 잡았다. 길은 더 좁을지라도 물들어가는 가로수와 단풍든 산의 호흡을 가까이서 느낄 수 있어 좋았다. 간간이 드러나는 햇살 아래 아침 안개에 싸인 가을 나무들의 색조는 신비스러울 정도로 아름다웠다. 요즘 흔히 하는 말이지만 그저 자연을 바라보는 것만으로 힐링되는 기분이라고나 할까.

속리산 근처 갈목리의 새 집은 들어가는 입구부터 아기자기한 즐거움을 선사했다. 집을 둘러싼 담벼락 가운데 노란 칠을 한 부분이 있어 밀고 들어가려니 대문이 아니었다. 그러다 문득 오른쪽으로 고개 돌려보니 아이들 소꿉장난에 등장할 것 같은 작고 앙증맞은 돌계단이 나 있어 그 위로 올라가니 마당이 나왔다. 집 안도 2층이 아닌데 오르고 내려가야 하는 공간들이 제법 있었다. 거실 한 켠에 마련된 다실 입구에는 옛 시골집에서나 볼 수 있는 댓돌이 놓여 있고 그 위를 딛고 올라서야 방에 들어설 수 있었다. 집을 설계한 이가 '재미있는 불편함'을 염두에 두었단다. 절로 머리가 끄덕여졌다.

집이란 이렇게 오르고 내려가는 입체적인 부분이 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누구의 삶이나 굴곡이 있듯이 집에는 어둑신하게 폐쇄적인 곳도, 햇살 아래 밝게 드러나는 양지도 아울러 함께 갖추고 있어야 한다. 우리나라 사람들이 가장 많이 몸담고 있는 아파트는 집이 아니라 그냥 평면적으로 구획된 공간이다. 편리와 효율성만을 따지다 보니 인간의 진짜 삶과는 겉도는 면이 있는 것 같다. 투신 자살률이 높아진 이유도 아파트라는 주거문화로 생겨난 현상 아닌가.

어렸을 적 시골집에서 살 때 어른들에게 혼나면 헛간에 숨어들어 푹신한 짚더미 속에 파묻혀 울음을 삼키곤 했다. 그러다가 알을 낳을 자리를 보던 암탉과 눈이 마주치기도 했다. 그러면 이 몸이 어딘가로 사라져서 엄마의 마음에 상처를 주고 싶던 앙심이 슬그머니 그 생명체의 천진한 몸짓에 저절로 풀리곤 했다. 아버지에게 종아리를 맞다 밤늦게 집을 뛰쳐나와 동네 고샅길이나 정자 근처를 어슬렁거리다 보면 "어두운 데 여기서 뭐 허냐·" 는 동네 어르신의 걱정을 듣곤 했다. 생각해 보면 그러한 시골집의 주거 환경은 청소년들의 극단적 선택을 아예 차단하는 효과가 있었던 것 같다. 그리하여 그 시절에는 청소년 자살률 같은 단어는 아예 존재하지도 않았다.

우리 아이들도 가끔 답답하다는 말을 많이 하곤 한다. 방에서 나와 봤자 역시 비슷한 공간의 모습뿐이다. 창문을 열면 바람에 흔들리는 나뭇가지도 볼 수 있고, 마당에 내려서면 비가 흩뿌리고 지나간 땅내음도 맡으며 천천히 거닐어 볼 수 있다면 마음이 다듬어질 때가 더 많지 않을까.

돌아오는 길, 우리 아이들에게도 자연이 끊임없이 대화를 건네는 집에서 살게 해주고 싶다는 간절함이 더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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