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정

2013.12.09 15:17:17

윤기윤

前 산소마을 편집장

지난여름 헤어졌으니 거의 반 년 만의 모자 상봉이었다. 그러나 모처럼의 재회는 난장판으로 끝나고, 어미는 시린 가슴을 부여잡은 채 긴 울음을 그칠 줄 몰랐다. 한 식구 된 지 벌써 2년 가까이 되었지만 그런 울음소리는 처음 듣는 것이었다. 바로 우리집 페르시안 고양이 코코의 이야기다.

코코는 지난 4월 1일 만우절 날 우리 식구들에게 특별하고 귀여운 선물을 안겨 주었다. 예쁜 새끼 4마리를 낳은 것이다. 그 중 두 마리만 건강하게 살아남아 날로 재롱을 더했다. 젖이 떨어질 때쯤 동생이 처제에게 주겠다며 한 마리를 데려갔다. 하지만 며칠 새 정이 들어버려 그냥 키우기로 하자, 그 처제가 매우 실망하고 있다기에 남은 한 마리 마저 보냈다. 내 입장으로 보면 제수씨 자매가 나란히 우리 새끼 고양이들을 키우게 된 것이어서 내심 반가웠다. 모르는 집으로 간 것보다 틈틈이 소식을 들을 수 있어 좋고, 더구나 동생네로 간 새끼고양이는 보고 싶을 때 얼마든지 볼 수 있으니 참 다행인 것이었다. 동생네 집도 우리집과 가까우니 가끔 모자끼리 만나게 해주자는 말도 오갔다. 아무리 말 못하는 동물이라지만 젖떼기 무섭게 생이별 시킨 것도 못내 미안한 터였다.

그러나 입바른 약속이 그렇듯 코코와 자식들은 그동안 단 한 번도 만나지 못했다. 반면 새끼 고양이들은 자라면서 서로 틈틈이 만나는 모양이었다. 같이 예방 접종도 다니고, 한쪽이 가족여행을 가면 다른 집에 며칠씩 맡기고 하다 보니 형제끼리-새끼고양이는 모두 수컷이었다-는 그야말로 가족의 정체성을 잃어버리지 않고 살아온 것이었다. 이름도 서로 연결짓듯 '귀염둥이' 이름을 반씩 나누어 '겸이(귀염의 뜻)' '둥이'로 지었다.

얼마 전 그동안 벼르고만 있던 모자 상봉을 드디어 시키기로 했다. 과연 서로를 알아볼까 하는 기대 반 염려 반의 마음을 가지고, 그동안 모자 사이를 갈라 놓았던 '몹쓸 인간들'은 상봉 현장을 지켜 보았다.

드디어 제수씨 품에 안겨 둥이가 현관문을 들어서자 자기 집 안에 있던 코코가 갑자기 안절부절 어쩔 줄 몰라 했다. 분명 무언가 본능적으로 아는 듯한 몸짓이었다. 집 문을 열고 꺼내 주자 코코는 얼른 달려가 조심스레 둥이의 얼굴을 만져 보려 했다. 그런데 그 순간 둥이는 두 발을 치켜 들고 이를 드러내며 마치 호랑이처럼 으르렁거렸다. 그러더니 순식간에 코코의 얼굴을 후려치는 것이었다. 그 다음 두 마리는 순식간에 하나로 엉겨 붙는 난투극이 벌어졌다. 어찌나 동작들이 날쌘지 어떻게 떼어 놓을 수가 없었다. 잠시 진정된 틈을 타 간신히 코코를 제 집으로 들여보내고 보니 둥이의 콧잔등에 피가 맺혀 있었다.

코코는 집 안에 갇혀 계속 둥이를 바라보며 긴 울음을 토해냈다. 이제껏 한 번도 들어보지 못한 애절한 절규와도 같은 울음소리였다. 마치 애간장이 끊어지듯이 깊디 깊은 속에서 저절로 온몸이 떨려나오는 울음이었다. 그 통곡은 둥이를 보내고서야 멈추었다. 그것은 왜 어미를 알아보지 못하느냐는 원망이었을까. 아니면 어쩔 수 없이 자신을 방어하기 위해 자식의 콧잔등에 상처를 낸 아픔이었을까. 인간으로서도 어미된 자의 그 깊은 마음을 헤아려 볼 길이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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