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벽을 달리는 신문

2014.01.20 18:01:31

윤기윤

前 산소마을 편집장

아파트에 살면 잃어버리고 사는 것이 너무 많다. 편리하다는 그 이유 하나가 나머지 모든 문제점을 덮어 버리니 아파트의 편리성은 정말 힘이 세다.

아파트의 가장 아쉬운 점은 자연과 계절의 기척을 거의 느끼지 못하고 산다는 점이다. 그뿐 아니라 사람의 기척도 마찬가지다. 결혼 전에는 계속 단독주택에 살았다. 담 밖으로 자전거 타고 지나가는 옆집 아저씨의 얼굴이 보이고 밤이면 가로 등불 아래 연인들의 속삭임도 들렸다. 그중 가장 반가운 것은 새벽 골목길을 울리는 신문 배달 소년의 가볍게 달리는 발걸음 소리였다.

새벽 4시 아련한 교회 종소리가 울릴 때쯤 경쾌한 발걸음 소리가 다가오고 신문이 마당에 가볍게 떨어지는 소리가 들리면 어김없이 하루가 무사히 시작되고 있다는 안도감이 들곤 했다. 저녁잠이 많은 나는 일찍 자고 일찍 일어나는 편이었다. 그래도 금방 일어나지 못하고 이불 속의 안온함을 즐기며 멀어져간 신문 배달 소년의 골목길 궤적을 마음속으로 그려보곤 했다. 때로 아버지가 직접 신문을 가져다 보시는 경우도 있었지만, 대개는 내가 가져다 안방 문 앞에 놓아두곤 했다. 새벽 공기 속에 퍼지는 종이와 잉크 냄새는 문득 정신을 깨우치는 기분이 들게도 하였다. 곱게 접은 옷처럼 신문을 흐트러뜨리지 않은 채, 들고 가면서 1면의 머리기사 내용만 우선 훑어보곤 했다. 잘 다려놓은 빨래처럼 아귀 반듯하게 차분한 부피로 가라앉은 신문을 내가 먼저 여기저기 좋아하는 면을 헤집어 보아서 들뜨고 엉거주춤하게 만들어 놓는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그것은 어쩐지 아버지가 드실 밥상의 반찬을 먼저 헤집어 놓는 것과 비슷한 기분이었다. 날것의 세상 소식 그대로 아버지가 먼저 여시고 맛보셔야 했다.

아침 세안을 마치시고 아버지는 마루에 신문을 펼쳐 놓은 채 한 장 한 장 넘겨 가며 때로는 감탄을 때로는 한숨을 섞어 자연스레 세상 소식과 당신의 소견을 담아 이런저런 이야기를 들려주셨다. 우리는 아침 밥상을 마주하거나 옷을 갈아입으며 세상의 옳고 그름과 선악에 대해 절로 생각해 보는 시간을 갖는 셈이었다.

요즘은 종이 신문을 보는 집이 많지 않다. 교직에 있는 아내의 말을 들으면 30여 명 한 반에 종이 신문을 구독하는 집이 대여섯 명 정도라는 것이다. 그리하여 신문 스크랩 관련 과제를 제시하기도 어렵다고 한다. 인터넷이 있으니 세상 뉴스를 아는 데 굳이 신문의 필요성을 못 느낀다는 것이다. 그러나 포털 사이트의 뉴스는 가장 대표적이거나 자극적인 내용을 싣는 경우가 대부분이므로 신문 구석구석 보물과도 같은 좋은 글들을 놓치기 쉽다.

종이 신문을 펼쳐 보면 기사 내용의 경중에 따라 배치된 지면을 보며 편집자적 안목을 높일 수도 있고 전체적으로 삶을 조망하는 시선을 갖게 된다. 또한, 책으로까지 엮어지지 않는 훌륭한 기사나 좋은 글들을 순간순간 만나는 기쁨이 있다. 책은 제본된 형태라 보관이 오래가고 언제든 다시 손에 잡을 수 있지만, 신문은 그날그날 보지 않으면 그 글들은 영원히 놓치게 된다.

올해는 많은 가정에서 새벽을 달려온 신문의 향기를 직접 맛보는 기회가 많았으면 좋겠다. 나와 같이 신문으로 인하여 정서적 기쁨까지 맛보는 이들이 늘어났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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