먼 친척 아저씨

2013.01.14 16:19:13

윤기윤

前 산소마을 편집장

겨울이 깊은 걸 보니 설 명절이 멀지 않았다. 어린 시절과 비교해 보면 명절에 대한 느낌과 감회는 그동안 건너온 세월만큼이나 아득한 간극이 존재한다. 열두어 살까지만 해도 명절은 무조건 좋았다. 며칠 전부터 설레는 마음으로 잠 못 이루며 뒤척이기도 하였다. 오랜만에 보는 사촌들, 평소에 맛보지 못하는 음식들, 흥성스런 분위기, 용돈을 쥐어주는 어른들…. 오로지 기쁘고 좋은 순간들로만 넘쳐나는 시간들이었다. 명절의 며칠 동안은 학교에 가지 않아도 되고, 공부하라는 잔소리 듣지 않고 맛있는 음식 실컷 먹으며 마음껏 뛰어놀 수 있으니 그야말로 일 년 중 최고의 사치스러운 날들이었다.

그러던 명절이 어느 순간부터 그저 덤덤하며 심지어는 한 해쯤은 명절을 건너뛰어도 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하게 된 것은 비단 나뿐만이 아닐 것이다. 성인이 되면서 명절이야말로 사람 노릇, 어른 노릇을 각별히 챙겨야 하는 고단한 때라는 것을 비로소 절감하기 때문이다. 유년의 명절이 풍요로운 것은 바로 그러한 어른들의 노고가 있기 때문이었다는 것을 새삼 깨닫는다. 변변한 조리 기구 하나 없던 그때 며칠 동안 부엌에서 불을 때가며 떡을 찌고, 음식을 만들던 어머니들, 명절 때 만날 조카들에게 조금의 용돈이라도 주려고 일감 하나라도 더 맡으려던 삼촌들이 있었기에 우리 유년 시절의 명절은 넉넉했던 것이다.

명절이면 오시던 친척 아저씨가 계셨다. 정확한 촌수는 모르지만 할아버지 집안의 친척이라고 들었다. 조실부모하고 오갈 데 없어 어렸을 때 할아버지 집에서 잠깐 지낸 적이 있었다고 한다. 학교 공부는 많이 못했지만 열심히 일한 덕분에 운수회사 사장의 인정을 받아 자리를 잘 잡았다고 했다.

여자 어른들은 부엌에서 전을 부치며 '00가 저렇게 잘될 줄 누가 알았나. 부모 잃고 한때 맘 못 잡고 돌아다닐 때는 사람 구실 못할 줄 알았더니 역시 나이 드니 철드네'라고 칭찬하곤 하였다. 그 아저씨는 당시 시골에서는 잘 구경도 못했던 커다란 바나나 송이를 들고 나타나 우리의 환호를 받은 적도 있었다. 아저씨는 우리 조무래기들을 모아 놓고 화물차를 운전하며 여기저기 다닌 곳들을 이야기해주곤 하였다. 특히 사회시간에나 배웠던, 우리나라에서 두번 째로 크다는 항구도시 부산과 바닷가의 선원 이야기를 해줄 때면 모두 숨죽여 귀를 기울이곤 했다.

그런 이야기를 듣고 있으면 아저씨에게서 먼 이국의 냄새가 나는 것도 같았고, 어쩐지 신비스러운 기운이 뻗쳐오는 것도 같아서 공연스레 마음이 들떠오는 것을 어쩔 수 없었다. 그러한 어른을 통해서 자연스레 다른 세상의 삶을 접촉하고 더 큰 세계를 동경하는 마음을 갖기도 하였다.

나의 그러한 어린 시절을 생각하면 일견 우리 아이들에게 미안한 마음이 들기도 한다. 명절에 볼 수 있는 친족의 범위는 사촌 이내가 전부이다. 아이들은 그 이상의 촌수가 있다는 것도 가정 교과서의 이론에서나 배웠을 뿐 그에 해당하는 친척들을 만날 기회가 거의 드물다. 그 흔한 현장체험학습의 실제 만남이 오히려 친족의 공동체 내에서는 잘 이루어지지 않으니 나의 소홀함도 크다.

방 안 여기저기 먼 친척 아저씨들이 담소하던 그 풍요롭고 넉넉한 유년의 명절 풍경이 그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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