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심(眞心)

2013.12.30 14:07:00

윤기윤

前 산소마을 편집장

12월이 막 시작될 즈음, 중국의 '항주와 상해'를 다녀왔다. 청주시자원봉사센터에서 기획한 '우수봉사자'를 위한 해외복지시설 견학프로그램이었다.

출발 전 일정을 살펴보니, 소소한 관광코스가 포함되기도 했지만 3박4일의 여행 일정 중 매일 한 번씩은 복지원이나, 양로원 같은 장애보호시설을 방문하는 것으로 되어 있었다. 그런데 나는 내심 은근히 걱정이 되었다. 말도 통하지 않는 한국 사람들이 몰려가 아무런 준비도 없이 무턱대고 장애보호시설을 방문해서 무엇을 할까. 또한 잠깐의 시설 견학을 통해 과연 무엇을 얻을 수 있는지 회의가 앞섰다. 우리나라에서 자원봉사자들이 장애인들이 있는 시설을 방문할 때는 목적이 분명하다. 그들을 위해 공연이나 빨래, 청소 같은 사소한 노동 그리고 맛있는 음식을 제공해서 잠깐이지만 위로와 도움을 주곤 한다. 그렇기 때문에 관광 중의 시설 방문은 그저 의례적으로 끼워 넣기 식의 한 행태가 아닐까 의심하기도 했다.

첫 번째 방문지는 상해양광복지원이었다. 주로 정신지체아들이 있는 곳이었다. 문을 열고 들어서자, 그들은 우리들이 방문한다는 사실을 알고 교실에서 우리를 미리부터 기다리고 있었다. 간단하게 서로 준비한 선물을 교환하고 통역을 통해 우리가 방문한 목적을 알려주었다. 비록 원생들은 모두 정신지체아였지만, 그들의 눈빛은 무척이나 해맑았다. 그런 아이들의 눈빛을 보니 더 마음이 불편해졌다. '관광여행을 하는데 명분이 부족하니 몇몇 복지시설 견학을 형식적으로 끼워 넣은 것'이라는 생각으로 가득 찼기 때문이었다. 그런 불편한 마음을 갖고 있으니, 괜히 중국의 장애 아이들에게 미안한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시간이 조금 흐르자, 나의 편견은 여지없이 무너지고 말았다. 사전에 어떤 약속도 하지 않았지만, 어느새 장애아이들 사이사이에 자원봉사자들이 앉아 아이들의 손을 잡고 어루만져주며 이야기를 나누는 것이었다. 서로 말은 통하지 않았지만, 진심 어린 눈빛과 행동을 통해 서로의 마음이 교환되는 듯 했다.

'어린아이와 바보는 진심을 말한다.'

유명한 영국속담이다. 어린아이 앞에서는 거짓말을 삼가고 진실만 말하라는 의미일 것이다. 우리 자원봉사자들이 그 아이들을 대함에 있어 형식적인 태도는 조금도 찾아볼 수가 없었다. 오랜 기간 동안 몸으로 익힌 봉사의 습관과 진심어린 마음이 아이들의 마음에도 흘러들었던 탓인지 마치 자신의 엄마를 대하듯 매달리는 아이도 있었다. 그 짧은 만남이었지만 헤어지는 순간이 오자, 서로 부둥켜안고 아쉬워하는 기색이 역력했다. 돌아오는 길에 한 자원봉사자는 "다음에 방문할 때는 미용도구를 갖고 와서 아이들 머리라도 깎아주고 가야겠다."며 눈시울을 붉히기도 했다.

"중국에 무진국(無眞國)이라는 나라가 있었다고 해요. 진실이 없는 나라라는 뜻입니다. 역설적으로 해석하면 애초에 거짓이 없으니 진실조차도 존재하지 않은 것이지요. 진심이란 말은 입으로 내는 순간, 거짓이 되고 맙니다. 진심은 말이 아니라, 행동에서 나오는 법이거든요."

지난 가을, 차를 내주면서 고산사 주지인 장산스님이 들려준 말이 여행기간 중에 불현듯 생각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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