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11.25 14:17:00

윤기윤

前 산소마을 편집장

얼마 전, 친구들과 만나 해물탕을 먹었다. 해물을 충분히 먹었음에도 주인아주머니가 "밥 몇 개 볶아드릴까요·"라고 묻자, 난 본능적으로 "인원수대로 볶아 주세요."라고 말한다. 그러면 여지없이 친구들은 말린다.

"야, 배부른데 무슨 인원수대로…세 개만 볶아 주세요."

"아닙니다. 인원수대로 볶아 주세요."

그때 친구들이 나를 쳐다보는 눈초리가 예사롭지 않다. '웬 식탐이 그리 많아?'라는 표정이다. 이런 연유에는 나름 아픈(?) 사연이 있다.

사실 20년이 다 되어가는 해묵은 이야기다. 큰 아이가 내년이면 대학에 입학하니, 벌써 13년 전의 일이다. 큰 아이는 유독 어려서부터 병치레가 심했다. 먹는 것도 늘 시원찮았다. 그런데 유독 다른 사람은 마다하고 하필이면 아빠인 내가 먹여주는 음식만 잘 먹었다. 그러다보니 어디를 가나 큰 아이의 식사당번은 의례껏 나였다.

어느 날, 처갓집 식구와 저녁식사로 집 근처 음식점에서 해물탕을 시켜 먹은 적이 있었다. 장인 장모를 비롯해서 처남과 처제까지 총 출동해서 식당 방 한 칸을 차지했다. 하지만 나는 아이에게 음식을 먹여주는 통에 그 흔한 조개 한 점도 제대로 먹지 못했다. 아이를 아내나, 장모에게라도 맡기고 먹고 싶었지만 도통 아이가 내 품을 떠나지 않으니 어쩔 도리가 없었다. 내 처지가 민망하셨던지, 이따금 장모가 슬쩍 바라보시더니 한마디 하신다.

"허참, 그 녀석. 아빠를 저리 좋아하니 원. 좀 들어봐. 윤서방!"

그때마다 내심 '해물탕 국물에 미나리를 넣어 볶아 주는 밥이 맛있지. 그것이라도 마음껏 먹으면 되지.'라며 잔뜩 기대를 하고 있었다. 모두들 배가 부른지, 숟가락을 움직이는 속도가 떨어지더니 마침내 기대했던 마지막 코스가 돌아왔다. 종업원은 재빨리 달려와서는 물었다.

"밥 몇 개 볶아 드려요?"

그러자 다들 반응이 시큰둥했다. 다들 배부른데 무슨 밥을 또 볶아 먹느냐는 소리가 여기저기서 들려왔다. 조금씩 불안이 엄습해 왔다.

"배부른데 뭐…세 공기만 볶아 주세요."

마음이 조마조마했다. 누구 코에 붙이려고 단지 세 공기라니. 종업원은 하얀 쌀밥에 미나리와 해물국물 그리고 적당히 다진 김치를 넣고 쓱쓱 비벼댔다. 마지막으로 고소한 참기름에 김을 부셔내니 향기가 그만이었다. 그런데 불안하던 나의 예감은 현실로 나타났다. 배부르다던 처가식구들이 모두 한 숟가락씩 푹푹 아낌없이 퍼가는 것이 아닌가. 아내에게 아이를 옮겨주고 이제야 좀 먹어봐야지 하고 단단히 결심했건만, 내 앞에 놓인 밥은 단지 한 공기도 채 안 되는 초라한 분량이었다. 서운한 마음이 울컥 밀려왔다. 체통 없이 밥 갖고 화를 낼 수도 없는 처지였다. 돌아오는 차안에서 아내에게만 괜한 짜증을 냈던 기억이 새롭다.

지금도 그때 일을 생각하면 은근히 부아가 난다. 밥 한 그릇 갖고 참 옹졸하고 치사한 사람이 되기 싫어 눌러 참았지만, 어쩌겠나. 체면 차리다보니 내 밥도 제대로 못 찾아 먹었는데. 그래서 주인아주머니에게 다시 한 번 큰 소리로 확인하듯 외쳤다.

"아주머니! 볶음밥 인원수대로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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