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방

2014.02.24 13:55:49

윤기윤

前 산소마을 편집장

언제부터인가 나의 가방들은 손으로 드는 형태의 것보다 어깨에 걸치는 숄더백이나 등에 메는 백팩이 대부분이었다. 손으로 드는 가방보다 숄더백 형태의 가방을 선호하게 된 것은 분명 옷차림과도 연관이 있다. 평소 캐주얼한 옷을 즐겨 입는 탓에 나이가 오십이 넘어서도 '어려 보인다'는 말을 종종 듣게 된다. 거기에 어깨에 척 걸치고 다니는 가방도 어려 보이는데 한몫을 했음이 틀림없다.

어느 남성매거진 편집장에게 방송인 김영철씨가 '남자에게 가방은 어떤 의미를 갖느냐·'라고 묻자, 그가 "여성의 가방은 자신을 대변하는 강력한 소품이라면, 남자에게 가방은 추억 같은 존재다. 어릴 적 백팩과 메신저 백을 주로 메다가 나이가 들어서는 서류가방을 들고 다니는 것처럼, 가방은 시간의 흐름에 따라 추억을 담는 물건이다"라고 해 공감한 적이 있다.

나이와 걸맞게 옷차림이나 가방의 형태가 변하기도 하지만, 나는 여전히 젊은 시절의 옷차림과 가방을 고집하니 나잇값을 못한다는 소리를 들을 법 도 하다.

유행도 시절에 따라 변한다. 사실 우리의 학창시절에는 손으로 드는 가방이 대세였다. 영화 '친구'에서 보았듯이 교복과 모자 그리고 손잡이가 긴 회색 가방은 중고등학생들의 상징이었다. 그러다 대학에 입학하면 교복과 회색가방을 벗어던지고 얄팍하면서도 세련된 갈색 가방에 자유로운 복장을 입고 다닐 수 있었다. 그때에는 요즈음 유행하는 숄더백이나 백팩은 거의 없었다. 대학생을 상징하는 갈색 가방은 대학을 가지 못했던 젊은이들에게는 선망의 대상이었다. 그래서 재수를 선택한 많은 학생도 너도나도 유행처럼 갈색 가방을 들고 다녔다. 대학에 실패해 재수했던 나도 바로 그 갈색 가방이 무척 갖고 싶었다. 하지만 아버지는 막무가내였다. 정당하게 대학에 들어가면 사주시겠다는 거였다. 공부에 뜻이 없었던 나는 부모님의 기대와 달리 학원 대신 온종일 영화관에서 살다시피 했고, 친구들과 어울려 밤새워 술을 마시고 다녀 부모의 속을 썩이기도 했다. 그러던 어느 날, 자정이 가까울 무렵 몰래 집에 들어갔을 때 아버지가 내 방으로 들어오셨다. 별다른 말도 없이 한참을 바라보시더니 한숨을 길게 내쉬었다.

"미안하다. 그깟 가방이 뭐라고 내가 고집을 부렸다."

아버지는 갈색 가방을 슬며시 책상머리에 놓으시고는 나가셨다. 신기한 것은 그토록 갖고 싶었건만, 그 가방이 전혀 눈에 들어오지 않는 것이었다. 오직 가방보다 아버지의 아픈 마음이 가슴을 '쿵'하고 울렸다. 마치 커다란 종이 내 가슴에 있었던 것처럼 내 막힌 영혼의 귀를 뚫고 뎅겅뎅겅 울려댔다. 거짓말처럼, 남은 기간 열심히 공부해서 대학을 갈 수 있었다.

지금 생각해보니, 그 갈색 가방을 갖고 열심히 학원을 오갔던 기억은 전혀 없다. 그 가방은 단지 하나의 상징으로 내 기억에 남았을 뿐이었다. 그것은 아버지의 마음이 그 가방 안에 고스란히 담겨 있었기 때문이 아닐까.

요즈음도 나는 어깨에 메는 백팩을 즐긴다. 나이 들어서도 청년처럼 백팩을 메고 다니는 이유는 무엇보다 양손이 자유롭기 때문이다. 손에 아무것도 없다면 길을 걷다 넘어진 누군가에게 손을 내밀 수도 있다. 그리고 이제는 연로하신 아버지의 손을 잡고 여행할 수도 있기에 더욱 좋은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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