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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병규

전 상당고 교장·교육학박사

요즘은 일상이 단순해졌다. 낮에는 운동을 하고 밤에는 독서를 하니 주동야독(晝動夜讀)이려나. 통상 오전 9시 경 산으로 출발하여 11시 반경 귀가한다. 기왕에 찻물로 쓰려 보살사 약수 4.8ℓ를 지고 돌아오면 제법 운동도 된다. 이제는 걷고자 산을 오르는지 물 길으러 걷는 지도 불분명해졌다.

약수를 받으려 줄지어 있다가 그윽한 쇳소리에 가까이 가서 살펴보았다. 사찰에는 수행자의 방일과 나태함을 경계하여 잠을 줄이고 깨어있으라는 의도로 풍경(風磬)을 처마 끝에 단다. 풍령 또는 풍탁이라고도 하며 물고기 모양 얇은 풍판이 십자모양 쇠를 움직여 종의 내벽을 치는데, 이놈은 굵고 기다란 대롱 여섯 개의 가운데 작은 나무판이 바람 따라 대롱을 건드리고 있다. 극락보전 좌우 요사채 앞에 각각 하나씩 매달려 길고 굵은 대롱 모양답게 웅혼한 울림소리이다. 이름을 찾아보니 오로벨이다. 1500년 내력의 고색창연한 사찰과 어울리지 않을 듯한 현대식 풍경임에도 잔잔하고 명랑하여 듣기 좋다. 바람에 울려 퍼지는 소리를 잠시 듣노라면 법당에 들어가 합장을 하는 듯 마음도 맑아지니 지척의 해우소가 풍겨내는 찐 냄새도 개의치 않고 넉넉한 마음으로 듣게 한다.

인도 여행 3개월의 보람인지 명상에 관심을 보여 싱잉볼(singing bowl)도 선물했던 셔니에게 보살사의 소리를 들려주자 며칠 뒤 택배를 보내왔다. 사찰에서 본 것보다 작고 가정용인 듯 하며 이름이 '히말라야의 명상'이란다. 유럽의 명인이 디자인한 클래식 윈드 차임으로 도, 레, 미, 솔, 라, 도 음계의 자유로운 울림이 아름답다. 앞 뜰 소나무 가지에 매달았더니 대문 안에 가지런히 놓였던 택배 물품을 수상히 여기던 아내가 손 탄다며 높은 곳으로 옮기잔다. 결국 2층 침실 외벽에 걸었는데 풍경은 아니로되 바람에 울리는 소리가 근사하다.

잠자리에서 눈을 감자 더욱 영롱히 와 닿는 오로벨 소리에 바라는 명상은 물러가고 대신 히말라야 트레킹을 계획했던 일이 떠오른다. 30대 때에는 산에 빠진 나머지 산악회 멤버가 되어 전국 명산 여러 곳을 무박 산행하였다. 몇 주일 산에 오르지 못하면 배낭을 꾸리거나 아스라한 연봉(連峯) 모습이 꿈에 나타날 정도였다. 고등학교에 근무할 때 동료들과 적상산을 시작으로, 영남 알프스 산행 때엔 천황산 고사리 분교 주변의 무성한 억새밭에 누워 파란 가을 하늘도 보고 설악 공룡능선의 늦가을 풍경도 누렸다. 마등령에서의 설악 조망은 지금도 눈에 선하다. 산을 좋아하고 제법 잘 걷는 사람들로 분위기가 무르익어 다음 여름 방학에 히말라야 트레킹을 하자 했건만 아뿔싸 계획 입안자인 필자가 고3 담임이 되는 바람에 수포가 되었다. 그리고는 도저히 갈 형편이 안 되어 속절없던 차 이제 바람결에 히말라야의 소리를 들으며 설산을 상상하고 있다. 이제는 3시간 넘는 산행이면 무릎도 싫어하니 참 무상타.

바람이 약할 때는 오로벨 소리가 제목처럼 나직한 음계라 귀에 거슬리지 않아 숙면에도 도움이 되나 바람이 심하거나 태풍 몰아치는 밤에는 옆집에 미안할 정도로 밤새 시끄럽다. 더워서 창문을 닫지도 못할 상황이라 아무리 명상음악이 좋다손 쉬지 않고 이어지는 소리를 견디다 못한 아내가 아예 떼어 바닥에 내려놓고야 잠을 잘 수 있었다. 태풍이 지난 뒤에 보니 보살사는 아예 끈으로 묶어 소리를 막아버렸다. 주승도 소리 때문에 잠을 못 이루었는가 아님 수행의 강도를 약하게 하려 했는가.

대문을 열면 오로벨이 소리로 주인을 반겨준다. 휘영청 들어오는 달빛에 울림소리를 들으며 제수염족(齊手斂足)하면 더 좋다. 이 소리가 명상 효과처럼 이웃 주민의 마음에도 알파파(alpha波)를 많이 생성케 하여 정서적 안정감을 갖게 하고 더 너그럽게 행복한 일상이 되도록 해 주면 야. 덕분에 온 동네가 늘 화평한 가정이면 내다 건 보람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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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북일보가 만난 사람들 - 단양교육지원청 김진수 교육장

[충북일보] 몇 년동안 몰아친 코로나19는 우리 나라 전반에 걸처 많은 염려를 낳았으며 이러한 염려는 특히 어린 아이들에게 실제로 학력의 위기를 가져왔다. 학력의 저하라는 위기 속에서도 빛나는 교육을 통해 모범 사례로 손꼽히는 단양지역은 인구 3만여 명의 충북의 동북단 소외지역이지만 코로나19 발 위기 상황에서도 잘 대처해왔고 정성을 다하는 학교 지원으로 만족도도 최상위에 있다. 지난 9월 1일 자로 단양지역의 교육 발전에 솔선수범한 김진수 교육장이 취임하며 앞으로가 더욱 기대되고 있다. 취임 한 달을 맞은 김진수 교육장으로부터 교육철학과 추진하고자 하는 사업과 단양교육의 발전 과제에 대해 들어 본다. ◇취임 한 달을 맞았다, 그동안 소감은. "사자성어에 '수도선부(水到船浮)'라는 말이 있다. 주희의 시에 한 구절로 강에 물이 차오르니 큰 배도 가볍게 떠올랐다는 것으로 물이 차오르면 배가 저절로 뜨더라는 말로 아무리 어렵던 일도 조건이 갖춰지면 쉽게 된다는 말로도 풀이할 수 있다. 교육장에 부임해 교육지원청에서 한 달을 지내며 교육장의 자리가 얼마나 막중하고 어려운 자리인가를 느끼는 시간이었다. 이렇게 어렵고 바쁜 것이 '아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