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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병규

상당고 교장

달이 휘영청 솟아 산책을 나섰다. 이름하야 월야산책! 갱년기 증상인지 갑자기 얼굴이 붉어지며, 더웠다 추웠다 한다고 하소연하는 마누하님의 건강도 챙길 겸 달빛 아롱진 밤 세상도 볼 겸 길을 나서니 나름 상쾌하다. 밤공기가 서늘하여 걸을만한지 제법 많은 사람들이 냇가 길을 걷고 있는데, 특히 여인네 몇몇은 군인들의 제식훈련 하는 것 보다 더 높이 어깨를 휘저으며 걷고 있어 신병 후반기 교육으로 통신학교 시절에 걷던 기억이 난다. 큰 걸음은 90도를 유지하는데 유독 통신학교는 120도로 팔을 올리라 하니 귀가 떨어져 나갈 정도로 추운 겨울에도 걷다보면 어느 덧 땀이 날 정도였다. 이 여인들은 어깨의 살줄임이 고통스런 걸음보다도 나은가 보다.

달이 조금 더 크게 오르니 덩달아 야은 선생의 시구가 떠오른다.

시냇가에 띳집 지어 한가로이 홀로 사니(臨溪茅屋獨閑居)

달은 밝고 바람은 청량하여 흥취가 있구나(月白風淸興有餘)

찾아오는 사람 없이 산새만 지저귀는데(外客不來山鳥語)

대밭으로 들마루 옮기고 누워 책을 보노라(移床竹塢臥看書)」 -吉再 閑居

권좌에 있을 때는 연일 찾아오는 손님으로 문턱이 닳다가 정권이 바뀌자 행인조차 쳐다보지 않으니 얼마나 고적했을까. 여기에 추락한 정치인으로 상실감까지 겹치게 되면 대개 몸져눕게 되거늘, 복잡한 심사를 담담히 조영하고 있으니 학식 높은 분의 덕망까지 가늠케 한다. 문득 이 시가 생각난 것은 교교한 달빛 때문일 테지 설마 나이만큼 다가오는 외로움 탓은 아니겠지.

달이 더 올라가는 모습에 불현 듯 15세기에 살았던 낙파 이경윤의 수묵화 '관월도'까지 연상된다. 나이 지긋한 처사가 달빛 아래 홀로 거문고를 타고 그 옆에서 동자는 쪼그리고 앉아 화로에 단지 올리고 차를 정갈히 끓이는 그림이다. 관월도라는 제하의 그림이 여럿 있지만 이 그림은 내가 좋아하는 달과 거문고와 차가 소재로 들어있는 때문인지 제일 마음에 든다. 月夜에 茶香 곁들인 거문고 소리는 얼마나 청아할고(그림 중 처사가 잡은 거문고는 무현금임에도).

이런 저런 생각에 묻혀 부지불식간 걸음이 빨라지자 마눌님이 푸념을 한다. 같이 걸으려면 보조도 맞추고 대화를 나누어야 한다나. 생각을 접자 자연스레 손녀 이야기로 돌아간다. 이제 27개월 밖에 안 된 녀석이 '그래서요', '그렇기 때문에'라는 말도 쓰고 차를 오래 타면 '지겨워'라고 짜증낼 줄 아는 영리한 아이라 재롱이 여간 많지 않다. 자식 키울 때는 몰랐는데 손주를 보면서 한두 번 놀라는 것이 아니다. 이 아이가 훗날 '내 인생에 많은 가르침을 주신 훌륭한 할아버지!'라 말할 수 있도록 우리도 더욱 근신하자는 다짐도 하면서.

동산 위에 비죽 올라왔던 달이 이제는 아파트 꼭대기에 걸렸다. 요 며칠 사이 냇가의 풀은 더 자라 시냇가의 분위기가 고즈넉하다. 물은 천천히 흘러야 땅속으로 들어가는 양이 많아진다는데 냇가에 무성한 풀이라 할지라도 그런 점에서 쓸모가 있구나.

걸을 때는 무념무상의 상태라 최상이라는데 온갖 생각으로 머리를 복잡하게 하다 보니 어느새 무심천이 나타났다. 거 참! 아무리 생각해봐도 누군지 이름 정말 잘 지었다. 有가 있어야 無가 있고, 무가 발전하면 虛가 되고 그 지극 경지가 무당이던가 아님 태극이던가? 그래도 다시 무심으로 회귀해야겠지.

집에 돌아오자 달은 어느새 중천에서 세상을 내려다보고 있다. 자리에 누워도 방을 하얗게 밝히며 쫓아오는 달을 내 어찌 홀대하랴. 침실 창문을 여니 달빛이 한 가득 나를 반긴다. 어깨 위에 앉던 달빛을 얼굴로 받으며 누워 달을 바라보다 이윽고 잠을 청하니 이제는 달이 나를 바라보고 있겠구나. 세상은 흘러도 영원무궁 불변하는 달빛이여. 그래도 무심한 달님이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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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북일보가 만난 사람들 - 단양교육지원청 김진수 교육장

[충북일보] 몇 년동안 몰아친 코로나19는 우리 나라 전반에 걸처 많은 염려를 낳았으며 이러한 염려는 특히 어린 아이들에게 실제로 학력의 위기를 가져왔다. 학력의 저하라는 위기 속에서도 빛나는 교육을 통해 모범 사례로 손꼽히는 단양지역은 인구 3만여 명의 충북의 동북단 소외지역이지만 코로나19 발 위기 상황에서도 잘 대처해왔고 정성을 다하는 학교 지원으로 만족도도 최상위에 있다. 지난 9월 1일 자로 단양지역의 교육 발전에 솔선수범한 김진수 교육장이 취임하며 앞으로가 더욱 기대되고 있다. 취임 한 달을 맞은 김진수 교육장으로부터 교육철학과 추진하고자 하는 사업과 단양교육의 발전 과제에 대해 들어 본다. ◇취임 한 달을 맞았다, 그동안 소감은. "사자성어에 '수도선부(水到船浮)'라는 말이 있다. 주희의 시에 한 구절로 강에 물이 차오르니 큰 배도 가볍게 떠올랐다는 것으로 물이 차오르면 배가 저절로 뜨더라는 말로 아무리 어렵던 일도 조건이 갖춰지면 쉽게 된다는 말로도 풀이할 수 있다. 교육장에 부임해 교육지원청에서 한 달을 지내며 교육장의 자리가 얼마나 막중하고 어려운 자리인가를 느끼는 시간이었다. 이렇게 어렵고 바쁜 것이 '아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