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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병규

전 상당고 교장·교육학박사

거금 들인 첫 대금이 6년 장학사 시절 동안 숨을 받지 못하여 안타깝게도 악기 구실을 못하게 되었다. 2005년 교감 발령을 받고서 동료들에게 내가 교육청에서 나가면 뭐하려는지 물어보라 했다. 첫째가 대금 레슨이요, 둘째가 테니스 레슨 그리고 세 번째가 한문 공부라는 각오를 내외로 다짐하려는 것이었다. 의욕적으로 대금을 다시 구입하여 한나절 줄창 대금 불려니 몸이 비비 꼬여 당최 허리가 아파 애를 먹었다. 그 모습이 안쓰러웠는지 사부님이 '힘드시죠? 차 한 잔 하시지요' 하며 차를 따라주었다. 있는 숨 없는 숨 깡그리 짜 내느라 손등에 땀이 맺힐 정도로 고생한 때문인지 차 한 모금이 너무 달아 이게 무슨 차인지 궁금해졌다. 삶의 보람인 보이차를 이렇게 알게 되어 차 서적은 물론 다구 자사호 관련 책까지 독파하며 제대로 배우고자 하였다. 등산에 한창일 때는 각종 버너만 7개였고, 테니스에 몰두해 각종 대회에 따라 다닐 때는 라켓과 운동복으로 방안을 메웠었지. 이제 차를 익히려니 주머니에 고였던 돈이 나가고 대신 차와 각종 다구가 들어왔다. 진천 공예마을 도공도 찾아가고, 단양에 부임해서는 하필 제일 먼저 찾아간 곳이 방곡 도예촌이라 종당에는 7분 도공 모두랑 차를 편히 마시는 사이가 되었다. 아내의 감시를 피해 줄기차게 차와 다구를 사 들였는데 큰 딸이 다실 전경을 페이스 북에 올리며 쓴 글귀에 웃음이 나온다. 꿋꿋한 우리 아빠란다.

보이차와 무이 암차 그리고 호남 흑차 등 도합 1천500여 종의 차를 다 알아 맛보기에는 역부족이다. 그래도 차 이력 20여 년 동안 여기저기 다회를 기웃거린 덕에 찻집에 가면 주인이 나보고 아무 차나 낼 수 없는 부담스러운 손님이란다. 커피를 좋아하는 아내를 두고 혼자 차를 마시다가 이따금 권하면 한두 잔은 마셔 주는데 세잔이면 더는 못 마신다고 방바닥에 벌렁 누워버린다. 웬만큼 술을 마셔도 취하지 않던 아내가 한번은 찻집에 들러 진기 센 생차를 마시곤 '어머! 내가 왜 이래?'하며 얼굴이 붉어지고 호흡도 가빠한다. 호되게 당한 뒤 프라이팬 설거지의 기름 제거로 찻잎의 위력을 알더니 가족 모임이 끝나면 우리 집에 가서 차 마시고 가라고 동생네를 잡을 정도는 되었다.

하루 중 우리 부부에게 가장 느긋하고 여유로운 때는 저녁 6시부터 8시까지이다. 라디오의 '세상의 모든 음악'을 들으며 우리는 차를 마신다. 그날 있었던 이야기도 하고, 강의 때 느낀 이야기도 나누고, 대문 앞 텃밭에 몰래 쓰레기 버린 사람 흉도 보느라 오히려 시간이 짧다. 아내가 손주 보러 간 날은 조촐하게 차를 우린 뒤에 나를 위하여 차를 따라 차향을 음미하고 뜨거운 찻물이 목 넘어가는 느낌을 즐긴다. 아내가 있는 날은 주로 날이 갈수록 기특해가는 손주들 이야기를 들어주며 아내의 찻잔에 차를 따라준다. 사이 남편에 대한 변함없는 말씀도 가끔 나오나 내가 누구인가. 40여년 눈칫밥 먹으면서 귀에 순한 소리와 역한 소리를 넘기는 법을 익혔는데 이 정도의 잔소리쯤이야 가볍게 흘려보낼 수 있다. 잔소리 할 남편이 있어 자네는 좋겠다고 속으로 여기며 그래도 묵묵히 차를 따른다. 어여 차나 마시게나! 똥밭도 함께라면 구를만하다는데 내가 있어 아내의 스트레스가 해소되는 듯 하니 이 또한 존재의 보람 아니런가.

두 겹 창문만 닫으면 질주하는 자동차 소리마저 안 들리는 적막강산에 바깥세상과 단절된 산속 절간이요 벽안유거(碧岸幽居)라. 라디오에서는 진행자 전기현이 나긋한 목소리로 내가 제일 좋아하는 베토벤의 피아노 협주곡 황제 2악장 adagio un poco mosso를 설명하고 있다. 선율은 잔잔히 흐르고 숙우에는 방금 우려낸 진기 20년 철관음 향이 거실을 휘돈다. 하루를 고단히 보낸 아내가 하품을 할 즈음 찻물은 식어가고 시간도 그렇게 흘러간다. 나는야 차를 따라주는 남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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