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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병규

교육학박사

환경의 중요성이 대두되는 만큼 언제 어디서나 편하게 마셨던 물은 아스라한 기억 속에 있고, 명암지와 부강 등 과거 유명했던 약수터 대부분이 음용불가 판정을 받아 잡초만 무성해졌다. 이런 와중에도 어린이 대공원 부근, 장구봉 그리고 보살사는 청주 시민들이 여전히 안심하고 찾는 물터이다.

걷는 날이면 이따금 보살사에 들러 약수 한 모금을 마시는데 약수터 주변 담벼락 고사릿과 식물과 무성한 담쟁이 넝쿨로 고란사 비슷한 분위기로 아늑하다. 기왕 가는 김이라 배낭에 페트 병 3개로 5.8ℓ의 물을 지고 온다. 덕분에 집안 한구석에서 먼지만 쓰고 있던 방곡 묵전요 도자기 물통이 드디어 앞으로 나섰다. 보살사 물로 우린 차 맛이 정수기 물보다 훨씬 좋다는 아내의 평은 땀 흘려 등짐 져 온 보람이다.

차는 단물로 우려야 맛을 잘 낼 수 있다. 단양 있을 때 그 지역에서 물맛이 제일 좋다고 소문난 냉천 물을 특별히 준비하여 다회를 열었다. 마침 중국에서 놀러 온 북경도사가 팽주로 맛을 보고는 물이 세다고 한다. 석회암지대에서 용출되는 물 특성을 금방 살피니 역시 고수답다. 우리나라 물맛으로 최고는 충북 달천이요, 한강의 우통수가 두 번째 속리산 삼타수가 세 번째라나. 물이 달아 甘川(단 내)라고도 불렸거늘 '달래나 보지' 하는 설화로 達川이 되었단다. 경북 예천도 醴(단술 례)자에서 물이 달다는 뜻도 있는데 茶人의 지존인 다산 선생과 초의 선사가 우렸을 다산초당 물맛은 어떨까. 단물은 감로수로 관세음보살의 정병에도 담기거늘 아무튼 차 우리는 물은 부드러워야 제 격이다.

보살사 약수터에는 현수막이 여러 장 걸려 있다. 주지 스님이 무량 발복하라며 물을 제공하지만 생각 없는 사람은 데리고 온 개에게도 사람 떠 마시는 바가지로 물을 먹이고, 집에서 씻고 와야 할 물통과 꼭지까지 아까운 약수로 헹구지를 않나, 페트병 수십 개에 물을 받아가므로 정작 사찰의 용수마저 부족하게 되나보다. 작년까지는 물이 콸콸 나왔는데 요즘은 쫄쫄거려서 물 조금 받는데도 겨울에는 두어 시간이 훌쩍 넘고, 물 풍성한 여름에도 한 시간은 족히 기다려야 한다. 걸음에 몰두하면 발이 앞으로 가는지 산길이 다가오는지도 모를 정도로 취해 걷다가도 목탁소리 들리며 절이 가까워지면 물가에 사람 없기를 바라며 부지불식간 걸음이 급해진다. 걸으려 산에 가는 건지 물 뜨려 가는 것인지도 헷갈리며 足前小貪하고 있다.

물 받는 사람들 모양도 가지가지이다. 어떤 아줌마는 휴대폰으로 허모의 강연을 크게 틀고는 이 사람 말이 맞지 않냐 며 생면부지 옆 남자에게 동의를 구하고, 어떤 사람은 튼실한 딸까지 둘 데려와 욕심껏 물을 한 차 가득 싣다가 기다리다 못한 성질 급한 남자랑 다툼도 한다. 지난 크루즈 여행 때 팔순 할머니가 차 한 잔 놓고 오가는 사람을 구경하는 것도 재미있다더니 물터 사람들 구경도 심심치는 않다. 다만 기다림이 문제다.

비탈길은 맨몸에도 숨이 턱에 닿도록 하지만 저녁 찻자리에 쓸 요량이요 더불어 운동도 되므로 즐겁게 물짐을 지고 오른다. 줄 서서 1시간 여 기다려 물을 받고, 다시 한 시간 정도 걸어와서 물통에 담겨진 물은 8시간 숙성 후 저녁에야 포트에서 끓여진다. 하루 중 고즈넉하고 편한 두 시간 찻물의 여정조차 이처럼 기나긴 기다림의 연속이다.

흘러가는 물도 떠 줘야 공덕이 된다는데 지하수를 퍼 올리느라 보살사에서는 전기세가 부담스러울 만큼 모터를 돌리는 공덕을 대중들이 고맙게 여기려나. 절 안에서는 물 펑펑 쓰면서 외부용 수도꼭지는 묶었다고 불평하고, 주지가 법주사 스님으로 바뀌곤 사찰 인심도 변했다며 초파일 연등도 이제 끝이라고도 한다. 散花功德으로 淸水報施하는 보살사의 마음을 살핀다면 저렇게 여러 장 현수막으로 고충을 토로하지는 않을 것이다. 감사하는 마음으로 물을 절제하여 받으면 현수막도 줄어들 테고 물맛도 더 부드러워지겠거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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