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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웹출고시간2018.10.21 16:31:47
  • 최종수정2018.10.21 18:33:46

김병규

전 상당고 교장·교육학박사

 동생에게 연락이 왔다. 어머님이 처녀 때 자주 갔던 창덕궁을 다시 보고 싶어 하시니 모시고 가잔다. 부대 지휘관인 집안 오빠의 눈에 들은 시골 총각을 소개받아 진천으로 시집 와서 어느덧 팔순 중반이라 다리 힘 더 빠지기 전에 아직도 생생히 남아있는 추억을 되짚고 싶으신 거였다. 후원 관람 예약이 11시 반이라 서둘러 출발했다. 가을 안개가 짙은 시골 길을 큰 아들인 내가 운전을 하고 둘째 아들, 딸 그리고 막내며느리가 같이 출발하는데 차안에서 먹을 요량으로 준비한 것을 보니 완전 소풍길이다. 아직 단풍이 들지는 않았어도 어머님이 기분 좋으실 때 내는 콧노래를 들으니 함께 하는 우리도 즐겁다. 오늘의 안전운전과 보람된 시간을 위해 다 같이 묵주기도를 올리며 고속도로를 달렸다.

 주차할 곳은 있으려나? 하는 옅은 불안감으로 창덕궁에 이르렀을 때 마침 딱 한자리가 있어 이동 거리가 짧아졌으니 역시 기도발 덕분인가. 돈화문으로 들어서서 궐내를 둘러본 뒤에 오늘의 목적지인 후원으로 접어들었다. 요행히 미세먼지도 없는 쾌청한 날에 많은 인파가 입구로 모여든다. 명색이 역사를 전공한 큰 아들이 있는데 가이드의 빠른 발걸음을 따라가기도 어려워 우리는 자유 관람이다. 고개 넘어 춘당대와 규장각 주합루 및 어수문 등을 의미와 역사적인 일화를 곁들여 보는데 벌써 50명 무리 두 팀이나 우리를 앞지른다. 그러면 어떤가. 피곤하신 다리를 쉬고자 왕세자의 독서 공간인 폄우사 정자 마루에 오르니 우리가 왕세자다. 화창한 햇볕에 마루까지 따스해진 위에 다리를 쭈욱 뻗고 있는데 시간이 우리를 위해 멈춘 듯 하고 마치 기름 가득히 넣은 자동차 계기판을 보는 듯 마음도 넉넉하다. 앞에는 승재정이 높직하고, 아래 관람지에는 부채꼴 형상의 관람정이 아름다이 비치고 있다. 옛 선현들은 물과 정자를 갖춰 거경궁리와 격물치지로 우주의 본성을 논했다 하는데 우리 속인들은 드러난 풍광에만 눈을 두지만 그래도 좋다.

 만약을 대비한 등산용 스틱을 어머님께 드리자 창피하게 무슨 지팡이냐고 펄쩍 뛰신다. 오늘 걸은 때문에 내일 다리가 아프지 말라는 예방책이라고 해 간신히 스틱을 손에 쥐어 드렸다. 민폐를 안 끼치려 만반의 준비를 해 왔다는 말씀에 자리보전하고 누워계심이 민폐이니 건강하셔야 한다고 말씀드리는데 목이 멘다. 돌계단을 오르내릴 때 부축을 해 드리자 괜찮다 하지 않고 손을 꼭 잡아 의지를 하는 손끝이 아련하다. 우리 어머님이 그새에 이렇게 늙으셨구나. 가을 햇볕은 찬연히 빛나건만 속가슴은 시리고 눈물이 어릴 정도로 슬프다. 이윽고 바로 옆 창경궁으로 접어드니 창덕궁보다 훨씬 호젓하다. 높은 자리인 자경전 터에 앉아 건너편에 보이는 서울대 병원에서 17살 때에 근무를 했던 경험과 그곳에서 아버님을 처음 만났다는 말을 들었다. 오직 남편 하나 믿고 19살 앳된 나이에 허위단신 시골로 시집을 왔건만 46살 된 부인을 두고 먼저 가시다니 아버님도 참 야속타. 비록 자식들이 아무리 잘 하고, 손주들도 잘 모신들 어디 남편만 하겠는가.

 따스한 햇살을 어깨에 받으며 걷는 사이사이 '참 좋다'고 가만히 되뇌심을 보고 이리 좋아하시는 것을 바쁘다는 핑계로 자주 못 모셨으니 그저 송구할 뿐이다. 가족 여행으로 11월에는 좋아하시는 바닷가 콘도를 가고, 내년에는 외국 리조트로 모셔 평생 자식을 위해 살아오신 보답을 드리자고 동생들과 의견을 모았다. 부모에게 불순한 자, 형제가 서로 싸우는 자 등은 극벌이라는 퇴계선생 향약을 성독하면서 반성과 조심을 했지만 풍수지탄(風樹之嘆)은 없어야 되리라.

 어머님을 진천에 모셔 드리고 늦게 집에 도착하자 전화가 왔다. 통상 잘 도착했는가 하는 안부 외에 한 말씀 더 하신다.

 '오늘 너무 고마워. 운전석 네 자리 옆에 기름 값을 넣어뒀다' 하이고 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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