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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병규

교육학 박사

작년 11월 대금 집중 연습으로 입산 공부를 했더니 회원들이 다들 만족한 눈치다. 입산 공부는 국악인들이 입산하여 득음을 할 때까지 용맹 정진하는 자기 수련과정이다. 그래서 대금 잡이는 소리가 폭포를 뚫고 나오도록, 소리하는 사람들은 목에서 피가 나올만큼 수행하는데 우리들도 올 9월 2일부터 3일까지 1박 2일 동안 구절초로 유명한 영평사 상서원에서 산 공부를 하였다. 바람은 청명하고 기온은 소슬한 가을 초입 날씨에 다구까지 진설된 너른 방에 둘러앉아 마음껏 대금을 때려 불었다. 사물놀이하는 사람들은 쳐서 먹고(쳐 먹고), 대금 잡이는 불어 먹는다는데 우리 같은 아마추어야 그저 쳐 불고 먹고 자는 형국이지만 그래도 좋다.

사찰의 배려로 깔끔한 방을 사용하는 터 임에도 주지 환성 스님이 다회까지 열어주신다는 전갈이 왔다. 처사가 다탁 위에 냉동 연꽃 봉지를 준비하니 연꽃차가 나오겠다. 주지 스님이 팽주로 연지에 연꽃 한 송이 띄우는 것은 평범한데 그 다음이 재미있다. 얼음 3덩이를 연지 물에 넣더니 옆의 연지에 연꽃 수술을 7덩이 넣고 3덩이의 얼음으로 시원하게 우린 물을 본 연지에 넣어 찻잔에 나눈다. 스님은 냉연꽃차의 원조가 영평사라고 자랑하는데 정말 차향이 일반 연꽃차보다 강하면서도 맛이 은근하다. 분위기가 익어가자 노스님이 다관을 잡고 말문을 여신다. 빙 둘러앉은 우리를 보며 하필 그 중에도 대금을 잡은 모양새로 보아 전생에 대금과 관련되는 일을 한 사람일 것이라 하며, 바라는 마음이 바로 업이라 하니 의미가 있다. 이렇게 바라는 것을 일종의 함장의식이라 하는데 이런 의식은 평생을 가다가 기회가 닿을 때 반드시 나타나게 된다는 거다. 마치 연밥이 씨앗 상태로 천년을 살아 있다가 조건이 되면 발아하듯이 우리의 바람도 업으로 종자불실(種子不失-인과응보)의 기회를 바라고 있는 것이다. 우리가 득음을 위하여 매주 모임을 갖고 공부도 하고 이렇게 산 공부로 노력하는 것도 일종의 업인 셈인가보다. 그러니 나는 미국에 대금 없이 갔을 때 허전하여 잠을 못 이루었나보다. 갑자기 스님이 근엄한 표정으로 '선한 것은 무엇이뇨·'라 묻는다. 여러 가지의 답이 나왔는데 스님은 '내게 좋고 다른 사람에게 좋은 것'이 바로 선한 것이란다. 남을 도와준다는 것은 가진 자가 자기보다 못한 사람에게 베푸는 우월함의 표시이니, 나누는 것이 진정 도와줌이라는 말도 차담과 더불어 주신 법문이다.

평소에 열심히 불지 않던 사람들이 하루 종일 대금을 잡고 있으니 이 또한 땀나고 쥐나는 일이요, 공력이 부족한 사람은 어지럽기까지 하다. 그럼에도 이루지 못한 소망이요, 갈증처럼 남아있는 대금 공부로 휴대폰을 제외하고는 TV같은 전자 매체도 없이 오로지 대금에 집중 전념하니 나름 보람 있고 즐거운 기분이다. 이거야말로 업이라기보다는 신선이요, 한량 같은 생활이 아닌가.

밤 9시까지 줄기차게 '경풍년' 공부를 한 뒤에 간단한 뒤풀이로 시작한 것이 어느덧 11시 넘게 이어지는데 옆 숙소로 피곤한 몸을 누이려 뜰에 나서니 달이 휘영청 밝다. '풍년을 기뻐한다'는 뜻의 경풍년은 주로 연례악으로 연주되었는데 대금 독주곡으로도 아름답다. 오늘 가까이로 내려앉은 저 달은 산속에 울려 퍼지는 대금 소리를 많이도 들었겠다. 일상생활을 하면서 이렇게 악기를 잡고 집중적으로 산에서 공부하는 것은 참으로 쉽지 않은 기회다. 게다가 갖 퇴임한 내 입장에서는 산에서 대금에 몰입하는 자체가 바로 속리라 하겠다. 선생이야 내 좋아서 한 일이니 그다지 노고랄 것도 없지만 40여년 근무로 인한 긴장을 죄다 털어내고 대금을 잡으니 더 홀가분하고 좋다. 자연은 인간을 거스르지 않고 자연의 소리는 인간을 편안하게 한다니 득음의 경지에는 못 가더라도 자연산 대나무로 소리만 낼 수 있어도 흐뭇하구나. 이런 것도 유인(幽人)의 삶이 아니런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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