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이 지난 12일 탄도미사일 발사하고 다음 날 핵물질 생산시설 공개했다. 북한 매체는 김정은 위원장이 핵시설을 시찰하는 모습까지 보도했다. 지난달 국제원자력기구(IAEA)가 북한이 영변 핵 시설을 계속 가동하고 또 다른 핵 시설인 평양 인근 강선 단지를 확장하고 있다고 밝힌지 약 15일 만에 북한이 핵시설 가동을 공개한 것이다. 이번에 보여준 핵시설이 어디인지는 불명확하다. 2010년 미국 핵물리학자 시그프리드 헤커 박사에게 보여준 핵단지의 우라늄 농축시설은 영변지역이었다. 헤커박사 개인에게 핵시설을 보여준 적은 있지만, 이번처럼 보란 듯이 핵시설을 드러낸 경우는 처음이다. 북한은 과거 핵실험으로 국제사회의 제재를 받고 있는 상황에서 핵시설을 이렇게 보여준 것이다. 분명 국제사회에서 또다시 제재 등의 조치가 취해질 것이 뻔한데도 북한은 왜 이런 무모한 행동을 했을까.
자신감일까. 아니면 다급함의 표현일까. 다급함으로 보인다. 사실 북한의 경제적 상황이 녹록지 않다. 2021년부터 시작된 경제개발5개년계획이나 올해 초에 내놓은 지방발전 20×10정책은 김정은이 사활을 걸고 있다. 성과를 내려면 외부의 지원이 중요하다. 그런데 지금과 같은 상황에서 국제사회의 제재를 무시하고 북한을 도와줄 나라는 거의 없다. 최근 러시아와 전략적 협력관계를 가속화시키고 있지만, 러시아도 우크라이나와 전쟁 중에 있고 또 국제사회로부터 외면받고 있다. 그래서 러시아의 북한에 대한 외교적·경제적 지원은 한계가 있다.
전통적으로 우호관계인 중국과 관계도 예전만 못하다. 중국이 미국, 유럽 등과의 관계를 의식해 북·러와 거리를 두기를 하려는 데다 북한이 러시아와 밀착하면서 중국과의 관계가 멀어져가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북한이 핵시설을 공개한 것은 국제사회에 메시지를 낸 것이다. 그것도 미국을 향해서다.
북한이 국제사회의 정상적인 구성원이 되기 위해서는 국제사회의 인정이 필요하고 그러기 위해서는 미국의 역할이 중요하다. 미국은 대선을 50여 일 앞두고 있다. 대선과정에서 북핵 문제가 주요이슈에서 밀리고 있다. 북한은 대선과정에서 북핵문제가 주요이슈가 되기를 내심 원한다. 그래야 북한이 미국과의 협상의 여지가 생길 수 있다. 그런데 최근 민주당과 공화당이 내놓은 정강에는 북한 핵관련 내용이 없다. 공화당의 도널드 트럼프 후보와 민주당 카멀라 해리스 후보는 토론회에서 기본적인 수준에서 북한 핵문제에 대해서 입장을 표명했다. 트럼프는 김정은과 개인적인 친분을 강조하면서 핵확산 방지를 위해 북한과 직접 대화로 해결하겠다고 밝혔고 해리스는 김정은을 독재자로 평가하면서 북한 스스로 비핵화를 위한 실질적인 방안을 들고 오지 않으면 협상하지 않겠다는 수준에서 언급했다. 의례적인 수준에서 입장이다.
핵문제가 해리스와 트럼프 간에 주요한 이슈가 되어 공방전을 벌려야 하는데 미·중관계, 이스라엘-하마스 전쟁,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등이 주요이슈를 점하고 있다. 지금까지는 북한 핵문제가 우선순위에서 뒤로 밀리는 모양세다. 우라늄 농축시설을 보여주면서 핵무기 생산능력이 향상되었고 핵을 보유하고 있음을 내세웠지만, 미 대선과정에서는 크게 부각되지 못하고 있다.
미국은 그동안 비핵화를 전제로 북한과 수차례 협상테이블에 마주 앉았지만 성과를 내지 못했다. 더구나 지금은 우라늄 핵농축시설까지 공개해 핵무기를 보유하고 있다는 것을 공개적으로 천명한 상태다. 미국의 입장에서도 북한 핵문제가 새로운 국면에 접어든 상황에서 섣부른 정책을 내세우기가 힘들어진 상태다. 21일 미국·일본·호주·인도의 안보협의체인 쿼드 정상회의에서도 한반도의 완전한 비핵화 의지를 재확인하는 수준이었다. 그래서 향후 미대선과정에서 북핵 문제가 주요논쟁거리로 등장하기 힘들어 보인다. 북한은 더욱 답답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